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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니 사인오프에 대해 피토하는 사람

컨퍼런스, 낱글
2024. 11. 13. PM 2:44:26
이 컨텐츠는 푸딩캠프가 주최하는 학습과 성장 컨퍼런스 2024에 연사자로 참여한 권준호(콴)님을 컨퍼런스가 끝나고나서 후속 인터뷰한 내용을 다루는 컨텐츠입니다. 사전 인터뷰와 마찬가지로 재밌게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연사자의 일면을 부각하여 각색한 것임을 알립니다.
또한 연사자에게 발표 내용에 관한 질문을 남기시길 독려하기 위해 기획한 컨텐츠입니다. 부담없이 질문 남겨주세요. 연사자분께서 답변해주십니다.
푸딩캠프(이하 푸딩) : 잘 지내셨어요? 그동안 ?
권준호(이하 콴) : 잘 지내긴 하는데, 이번엔 왜 또 인터뷰를 요청하셨습니까?
푸딩 : 사전 인터뷰에서 콴이 누군지 얘기 했고, 행사에서 그 콴이 주제에 대해 얘기했잖아요. 이번엔 사후 인터뷰로써 콴의 발표에 대해 정리하고 청중과 독자분이 콴과 소통하는 자리가 형상화되도록 하려 해요.
: 사전 인터뷰는 봤어도 사후 인터뷰는 처음 보네요. 왜 자꾸 일을 벌이시는 겁니까? 사람들 앞에 나가서 춤추는 거 싫다며.
푸딩 : 쓸데없이 절 인터뷰 하지 마시고요. 사후 인터뷰 취지를 이해하셨다면, 오늘 인터뷰에서 뭘 달성하고 싶으신지 여쭤보는 걸로 시작해볼까요?

제목은 건조, 발표는 촉촉

: 잠깐만요. 제 발표 영상이 공개 됐는지 한날이 곳곳에 홍보를 하시던데, 발표 제목을 어딜 가나 PRD를 얘기하는 사람으로 밀다가 삼성페이 만든 PM이 PM은 무엇으로 성장하는지 알려줌으로 바꾸셨더군요. 혹시 잘 안 먹히던가요?
푸딩 : 아, 맞다. 본인이 지은 발표 제목보다 저 제목을 더 좋아하시죠. 유튜브라서 변화를 준 것 뿐이에요. 삼성페이 단어가 들어가야 잘 팔리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 저는 삼성페이로 뽑아먹으려고요. 마음에 안 드시면 콴이 정한 제목으로 홍보할게요.
: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 제목을 쓴다는 것을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푸딩 : 없나요? 대기업 삼성전자를 퇴사한 후 PRD를 얘기하는 사람. 뭐 이런 식으로 꼭지 따게.
: 사후 인터뷰가 잡히길래 컨퍼런스 후 한 달을 돌이켜봤습니다. 푸딩캠프에 기껏 자리 깔고 서서 PRD에 대해 얘기했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잘 모르니 필요성을 못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고 뭔지도 모르니 당연히 저한테 연락조차 오지 않는군요.
푸딩 : 아항~♥️ 그 말인 즉, 사후 인터뷰에서도 영업하겠다는 거군요!
: 하하하하, 이 사람. 그렇죠. ♥️
푸딩 : 인터뷰 해ㅈ 콴 : 또 캡틴 아메리카 짤 넣지 말고, 인터뷰를 계속 하지 않겠는가! ㅜ셔서...?
푸딩 : 음. 인터뷰 기술이 느셨군요.
: 당신의 패턴을 파악했기 때문이야. 근데 시덥잖은 인트로를 이렇게 길게 가져가도 됩니까? 너무 긴데?
푸딩 : 우리가 이렇게 티키타카 하는 게 잘 어울려서 재밌다는 독자가 있어서요. 그럼 진행하죠. 행사 당일에는 엄살 피우셔서 몰랐는데, 청중도 그렇고 다른 연사자 분하고 얘기 나눠보니 콴 발표가 무척 좋았대요. 콴은 어떤 시간을 보내셨어요?
: 제 발표 현장에 사람도 없고, 인기 투표 같은 걸 한 것도 아니어서 전 영 서운했죠. 게다가 제 발표는 마지막 시간대였어서 지각하는 청중이 들어올 법 했잖아요? 근데 딱히 그런 것 같지 않았고. 또, 제 앞 세션이었던 치즈님 세션엔 사람이 더 많기도 했고. 무엇보다 Paul 세션엔 일반 청중이 많아 보였는데, 제 세션엔 딱 봐도 관계자가 더 많아보였어요.
푸딩 : 뭐가 그리 서운한 게 많아요. 근데 관계자라니?
: 업계에서 PM 경력이 좀 있거나 행사 운영자나 연사자요.
푸딩 : 운영자야 너무 바쁜 거 아니면 자유롭게 세션 들으라고 독려해서 그래요. 업계 경력자나 연사자가 듣는 건 그 나름대로 좋지 않아요? 특히 탐정토끼님은 콴 생각에 상당히 관심을 보이셨어요. Chloé님도 콴이 굉장히 기민하게 해결책을 자신에게 제시해주셨다고 감탄했고요. 연사자 간 네트워킹까지 이뤄질 것 같아 참 뿌듯합니다.
: 사실 저도 좋았어요. 바쁜 사람들 만나서 좋았고,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난 것도 즐겁고 재밌었어요. 세션 끝나고 나서 이 얘기 꼭 했어야 했는데 안 해서 아쉽다고 생각하는 얘기도 한두 개 있는 걸 보면 좋은 시간을 더 알차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애틋하게 남은 것 같아요.

PM이 성장하는,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푸딩 : 그게 첫 질문인데, 확실히 흐름 파악이 빠르셔. 아쉽다고 여긴 그건 뭔가요?
: 발표 끝나고 정리하면서 “아, 이거 얘기했어야 하는데 깜박했네”, 라고 생각한 부분이 있어요. 성장하는 포인트에 대한 거예요. 내용 전체를 보면 PM이 프로세스 안에서 어떻게 일하면 성장을 못하는지, 산출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얘기를 했는데, 그럼 반대로 PM이 어떻게 해야 제품 산출을 전반적으로 매니징하는 상황이 되는지 얘기하면 좋았을 거예요. 그 상황에서 어떤 포인트가 오거든요.
푸딩 : 예를 들면요?
: 게임에서 던전을 돌 때, 꾸준히 경험치이나 잡템(자잘한 아이템)을 획득하지만, 큰 보상을 얻는 시점은 따로 딱 오잖아요.
푸딩 : 그렇죠. 던전을 깨든 던전을 지키는 대장을 이기든. 막 밝고 화려한 비주얼 효과 터져주고.
: 바로 이게 그런 시점이라고 말하고 싶었고 말했어야 했는데, 세션을 준비할 땐 저도 생각 못했어요. 세션 끝나고 나서 복기하다보니 아, 그런 걸 얘기했어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거 하나가 딱 마음에 걸려 있습니다.
푸딩 : 이번에 컨텐츠 만들어서 올리니까 그때 제목을 바꿔 드릴까요?
: 오, 좋아요 좋아요. 제목을 좀 어그로를 끌어가지고. 흐흐흐흐흐
푸딩 : 큭큭큭큭큭큭. 뭐야, 그 반짝 빛난 눈빛은.
: 그렇지 않아도 제가 문단으로 하나 정리하는 중이긴 해요. 내용은 대충 그런 거예요. 내가 거기서 강조했던 내용이,
PM이 와이어프레임을 개발팀에 핸드오버하고 네가 알아서 개발해, 라고 말하는 상황으로는 성장할 수 없어.
왜?!
그건 네가 산출한 게 아니니까.
: 라고 얘기를 하는 거고. 그렇게 해서
네가 추상화 해놓은, 압축 해놓은 와이어프레임을 쟤가 해석하게 만들어버리는 상황으로 가지 말고, 가장 로우 레벨에 있는 네 자신의 아이디어, 문장으로 정리된 아이디어를 전달하고, 네 아이디어가 씨앗이 되어 자라오듯이 네 것도 자라고, 네 걸 가져가는 UX 디자이너이 됐든 개발 아키텍트가 됐든 걔의 씨앗도 자라 올라오고, 걔를 중간 중간 확인하면서 같이 제품을 만들어가는 거야.
: 이렇게 저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푸딩 : 내용 참 좋네요. 근데, 얘, 쟤, 걔 이런 거 남발하지 말아요. 활자로 표현하면 맥락을 읽기 어렵단 말이에요.
: 네가 이렇게 해놓고 던진 다음에 쟤가 얘를 해석해서 가는 게 아니고, 너도 여기를 던지고 쟤도 여기를 받고, 너도 걔도 이만큼씩 올라가면서 서로 서로 맞추고, 같이 제품이 올라가는거야.
푸딩 : 이 사람이, 정말! 계속 대명사와 지시대명사로 설명 압축할 겁니까? 그렇게 섞어가며 남발하면 인터뷰 컨텐츠에서 어떻게 표현하냐고요...
: 아, 제가 그랬습니까? 첨부 영상보니 알겠군요. 조심할테니 저 움직이는 이미지를 빼주세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 아무튼, 이렇게 얘기를 하고 싶은데, 그런 상황이 됐을 때 자신은 미처 알지 못했는데, 나보다 UX 전문가인 쟤, 나보다 개발 전문가인 쟤는 내가 알지 못했던 뭔가를 자신의 경험으로 자신에게 보여줄 수가 있는거죠.
: 네 생각보다 더 좋은 플로우나 져니(Journey)를 보여주기도 하고, 너는 데이터 플로우가 이렇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쟤는 이렇게 처리를 해버리고. 이걸 네가 같이 가면서 보는 거야. 너보다 잘하는 애가 만들어 놓은 것을 네가 확인하고 보면서 걔를 흡수하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 PM이 성장하는 순간이야,
: 라고 말을 하고 싶거든요. 제 지인이 한 얘기 중에 정말 잘 쓴 문서는 그걸 보고 “그 말이 맞네”, 라고 감탄하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이 이 생각이야”. 마치 내가 원래 생각했던 것처럼 느끼는 문서가 정말 잘 쓴 문서라는 말이 있어요.
푸딩 : 동감하고, 재밌는 표현이네요. 근데 지시대명사 좀 줄여주세요? 너무 힘들어요. 저 움직이는 그림 빼드릴게요.
: 내가 뭐라고 쓴 내용에 대해 모르던 애가 내 문서를 보고 “내 생각도 원래 이래”라고 흡수하는 게 정말 잘 쓴 문서라고 생각해요. 똑같은 거죠. 걔가 만들어 놓은 걸 내가 원래 내 생각인양 흡수해버리는 순간, 바로 그 순간에 번쩍하고 성장하는 거거든요.
푸딩 :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 뭔가의 제목같은 그 표현은 뭔가요?
푸딩 : 책 제목입니다.
: 후원사의 책입니까?
푸딩 : 그냥 좋아하는 책입니다. 근데 좋은 아이디어네요. 후원사의 책이라. 계속 하시죠.
: 그래서 그 포인트를 자꾸 만들어주기 위한 순환고리(iteration)를 가져간다, 이 얘기를 세션 중간에 넣었으면 더 좋았을 거라 생각을 했어요.
푸딩 : 기왕 세션에 넣지 못한 것, 후속 강연으로 갑시다! 연사에 대한 소개 스토리 앞에 들어가고, 후킹하는 마무리 넣고. 그러면 지금 설명으로도 인터뷰 컨텐츠 하나 나오는 각이네요. 크크크크큭
: 킅허허허허하하. 저도 이런 사후 인터뷰 같은 후기나 소감 이야기를 뉴스레터에 쓰고 싶어서 정리를 좀 해보고 있는데, 이번 세션은 현장도 좋았고, 제 세션 이후 이뤄진 네트워킹도 다 좋았는데, 또 다른 레슨런을 갖게 해서 제겐 굉장히 의미있고 좋은 시간이었어요.

성장하려거든, 무책임 결재를 믿지 말지어다

푸딩 : 뭔 질문 좀 하면 후속 질문까지 다 나와버리네. 히히. 강사하셔도 잘 하시겠어요. 마침 매직에꼴이 강사를 구하는데 말이죠.
: 방금 그거, 진짜로 질문한 겁니까, 후원사 광고입니까?
푸딩 : 험험, 광고 아이디어 감사합니다. 혹시 현장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질문 같은 건 없나요?
: 나중에 보니까 질문을 했던 사람들이 다 발표자들이더라고요. 허흐흐허허
푸딩 : 앗핫항하하하하핫
: 제가 그 세션에서 와이어프레임을 핸드오버 하는 것으로는 안 돼, 라는 얘기를 하나 하고. 두 번째로 와이어프레임 핸드오버를 했을 때 벌어지는 문제들을 설명하면서 그런 문제를 막겠다는 이유로 사일로(Silo)에서 사인오프를 치겠다고 하면 안 돼, 라는 얘기를 하고. 이렇게 두 가지를 중심으로 얘기 했는데, 이 두 번째 얘기에 대한 질문이 좀 인상적이었어요.
푸딩 : 두 번째 질문은 질문자 자신이 겪었을 때 생생한 질문과 답변이 오갈 것 같네요.
: 맞아요. 아마 질문하신 분은 그런 상황을 경험을 했거나 혹은 현재 하고 있거나, 그랬을 확률이 높아요. 그 분도 사인오프를 믿고 있지 않는 것 같은데, 사인오프를 자꾸 받아오라고 하는 상황을 경험하고 있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해야 되냐는 종류의 질문이었어요.
푸딩 : 현실적으로 방도가 없지 않아요?
: 사람이 왜 이리 냉소적이야! 근데 현실은 그렇죠, 뭐. 월급 받는 직장인으로서 직장 보스가 사인오프 받아오라는데, 그걸 안 받아올 수는 없어요. 월급 받아야 되니까.
푸딩 : 그럼 다소 뻔한 질문과 답변이 된 셈인데, 그게 왜 기억에 남은 겁니까?
: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에서는 영업 부서의 부서장이 사인오프를 했건 CPO가 사인오프를 했건, 걔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요.
푸딩 : 걔가 누굽니까? 설마 결재자? 결재자가 책임을 지지 않아요?
: 결재자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나중에는 문제가 생겼을 때 “네가 결제했잖아. 네 책임이야” 라고 말하면 결재자는 당연히 “야, 네가 설명을 똑바로 못해서 그런 거지” 라고 얘기할테죠. 결국 이 사인오프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의미 없는 단계, 그냥 내가 이 단계를 확인했다 정도의, 마치 페이스북에서 좋아요 누르는 정도.
푸딩 : 👍 근데 그 정도 의미밖에 없는 좋아요를 받지 못하는 저는 뭐가 됩니까?
: 좋아요를 못받은 사람이 되는 거죠.
: 그런 한날처럼,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 사인오프를 하고 있다, 라고 답변을 했거든요. 거기에 더해 그 사인오프를 어떤 단계로 진행되는 걸로 믿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 라는 얘기를 했는데, 그 질문이 제일 기억에 남는 질문이에요.
푸딩 : 사인오프를 우리 말로 표현하면 뭘까요? 책임전가 결재? 무책임 결재?
: 무책임 결재에 가깝죠. 실제로 우리가 실무에서 일하면서 어떤 형태 건 사인오프 혹은 사인오프에 준하는 뭔가를 경험하고 있어요. 결재까지는 안 하더라도 내가 CPO한테 보여주고, “CPO가 아무 얘기 안 하면 문제 없는 거지”, 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는 정도의 아주 가벼운 수준의 통과하는 느낌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자꾸 그런 상황들을 가정하고 있는 거예요.
: 의미상으로 사인오프라고 하는 행위 자체는 워터폴을 기준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나온 것들인 거고. 다만, 이제 우리가 소프트웨어 기업들에서 사인오프를 쓸 때, 제 경우 두 번 경험했는데, 두 번의 상황은
  1. 무언가 문제가 생겼어
  2. 제품을 냈는데 혹은 내는 과정에 문제가 생겼어.
  3. 그리고 그 문제는 대부분 다 요구사항과 제품이 맞닿지 못하는 상황.
: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거거든요.
: 실컷 만들었는데 “이거 왜 안 돼? 당연히 돼야 되는 거 아니야?” 라고 말하는 상황들이 늘 벌어지는 거죠. 그리고 이런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경영진 내지는 리더가 굉장히 손쉽게 하는 선택이 사인오프입니다. “요구사항 똑바로 확인 안 해서 그런 거네. 요구사항 똑바로 확인해 와” 라는 식으로 떨어져 버리는 거예요.
푸딩 : 결재자는 자신이 매우 구체적인 생각을 한다고 믿지만, 사실 어느 한두 가지 아이디어만 구체적이고, 나머지는 매우 막연하고 모호한, 좋게 표현하면 추상적이므로 그들의 승인(Confirm)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고 저는 말하는데, 그 상태에서 결재하는 게 사인오프군요.
: 그렇죠. 그래서 그 사인오프를 믿어서는 안 돼요. 왜? 사인오프하는 결재자도, 그리고 그 사인오프를 받아오라고 요구하는 나의 상사도, 둘 다 사인오프한 그 행위의 실질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있지 못하니까요.
: 사실 우리가 워터폴에서 사인오프를 했다 그러면, 그건 일종의 승인된, 결재가 끝난 상황인 거예요. 그래서 워터폴에서는 사인오프를 했기 때문에 결재한 쪽에서 책임을 지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소프트웨어 개발을 애자일로 하자”, 라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이미 사인오프랑 거리가 멀어지는, 거리가 되게 멀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 질문이 되게 인상적이었고.
푸딩 : 여러 면에서 인상에 남았나 보네요.
: 다음 번에 무슨 기회가 있으면 꼭 이런 얘기를 해야지, 라고 생각한 게 하나 더 있었는데.
푸딩 : 사인오프 얘긴가요?
: 맞습니다.
푸딩 : 어딜가나 PRD를 얘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인오프를 얘기하는 사람인 것 같은데요?
: 아니, 현장 질문에서 인상에 남은 얘길 하라고 해서 그렇지. 아무튼 그게 뭐냐면, 하나의 상황을 가정할게요.
: PM이 어떤 정책을 결정해서 제품이 나왔어요. 그리고 그 제품을 우리가 흔히 말하는 C레벨들까지 모여가지고 리뷰를 쭉 합니다. 리뷰를 하면서 “야 이거 왜 이렇게 만들었어? 이렇게 해야 되지 않아?” 라고 얘기를 하고, 들어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을 고쳤어요. 그리고 고친 버전으로 제품이 나갑니다.
: 요런 상황을 한 번 가정해 봤을 때, 일반적인 회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냐 하면 “야, 거 봐. 이렇게 고치는 상황이 벌어져가지고 괜히 개발 한 번 더 했잖아. 한 번에 끝낼 수 있는데, 두 번 했잖아. 개발 리소스를 낭비했잖아. 자원 아끼도록 앞으로 사전에 꼭 이러 이러한 결제를 먼저 받아. 저러 저러한 확인을 먼저 해” 라는 식으로 개선의 결론이 떨어져 버립니다. 프로세스의 개선이라는 결론이 떨어져 버리는 거죠.
푸딩 : 제 치기어린 시절이 기억나서 부끄럽네요.
: 저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 문제, 잘못이라는 얘기를, 이 사인오프를 얘기할 때는 꼭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 그러냐면, 그 상황은 고칠 게 아무것도 없는 매우 정상적인 상황인 거예요. 제품이 배포가 됐고, 배포된 것을 내부 고객이 리뷰를 하면서 개선점이 도출이 됐고, 그래서 고쳐서 나갔어요. 애자일의 관점에서 보면 너무 그냥 정당하고 예쁜 프로세스일 뿐인 거죠. 그 시간이 아주 짧기만 하면 더 예쁘겠죠. 그런데 그게 마치 개발력이 낭비됐다거나 효율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그 앞에 리뷰 단계같은 걸 넣어 개선을 해버리게 되면, 그건 개선이 아니라 애자일을 버리는 개악으로 가는 거죠. 저는 회사에서 그런 경험을 되게 많이 했습니다.
: 그래서 그런 걸 해보고, 사람들이 아, 나도 한 마디 해야 되겠으니, “앞으로 이런 문제를 없게 해서 이렇게 고쳐야 돼” 라고 얘기를 하고,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앞에 단계만 쌓여지면서 문제가 생기는! 왜냐하면 그때 그 좋은 개선점을 도출한 그 C레벨은 그 상황에서는 그 개선점을 의견으로 낼 수 있지만, 더 앞단계에서는 절대로 그런 결점을 볼 수 없을 거예요. 앞에서는 보이지 않으니까 그게. 그래서 사인오프에 대한 우리가 갖고 있는 미신같은 것, 이런 데 얽혀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어서 언젠가 이 얘기를 한 번 또 글로 쓰리라, 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푸딩 : 그러지 말고, 푸딩캠프에 콴의 공간을 마련해드릴테니 여기에 쓰시는 건 어때요? 어딜가나 PRD와 사인오프 얘기하는 투덜이 콴. 이렇게.
: 좋아, 좋아.
: 계속 이어가자면, 영업부서가 됐건 운영부서가 됐건 마케팅부서가 됐건 혹은 CSO가 됐건, 그런 단계에서 “요구사항이 이거야” 라고 사인오프를 받아와야 되는 상황이 돼버립니다. 왜냐하면 그 상황에서 개발팀은 “저 PM이, 저 PO가, 저 기획자가 제 할 일을 똑바로 못해와서 우리는 개발 리소스를 낭비하게 됐어” 라고 얘기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도 많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이 되면 흔히 말하는 VP나 CTO나 CPO같은, 흔히 C레벨에 있는 사람들이 “그래, 요구사항을 똑바로 사인오프를 받아와” 라는 걸로 너무 손쉽게 이런 상황을 해결하려고 하는 거예요.
푸딩 : 심리적으로 안전하지 못한, 안 좋은 조직 문화지요.
: 굉장히 손쉬운 해결책이지만, 절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잘못된 길인 거죠. 달콤한 사탕 같은 거예요. 그 자리에서는 모든 게 예뻐요. 논리적으로, “받아오면 되겠네, 사인오프”, “요구사항, 쟤가 요구하는 거니까 받아오면 되겠네” 라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애자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애자일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게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도 알아야 되는 거죠. 사실 그 요구사항을 결재자도 몰라요. 나한테 요구한 걔도, 정확하게 몰라, 요구사항이 뭔지. 문제가 있다는 건 알아. 결재자한테 문제를 제기한 고객사도 요구사항이 뭔지 몰라요. 문제가 있다는 건 알아. 근데 그 요구사항이 제품적으로 뭔지는 우리가 찾아가는 여정에 있다는 걸 우리가 인지해야 되는데, 그걸 놓치는 거예요
푸딩 : 저...저기.
: 그러니까 우리는 거의 모든 일을 다 워터폴로 하고 있는 거죠. “쟤가 요구사항 확정해오면 나는 개발해내면 끝이잖아” 이건 워터폴인 거예요. 그러니까 사인오프가 들어갈 여지가 있는 거고, 되게 손쉽게 사인오프를 선택하고. 하지만, “나는 지라를 쓴다”거나, “나는 피그마를 쓰니까 애자일 하지”, 라고 생각하고 있는 거지.
: 그런 문제들을 항상 만나오고 있고, 봐오고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제시하는 게 PRD거든요. PRD가 요구사항을 형상화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전에 있던 조직에서도 그런 상황들이 계속 반복됐고
푸딩 : 이번엔 어느 회사라고 언급하지 않으셨군요. 고맙습니다.
: 어디일 것 같아요?
푸딩 : 알고 싶지 않아요. 근데 PRD를 제시했을 때 받아들여지던가요? 안 받아들여졌으니 어딜 가나 PRD를 얘기하는 것 같긴 한데.
: 그럴 때마다 이런 얘기를 했지만, PRD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걔네들은 사인오프로 가버렸지. 너무 손쉽게. 그리고 여전히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푸딩 : 가만 듣다보니 뭔가 이렇게 마아악 얘깃거리 깁고 정리해 덧대어서 지금 실시간으로 후속 컨텐츠를 만드시는 것 같은데요? 말씀하면서 그와 동시에 머릿 속에서 정리를 하는 느낌인데?
: 아유, 푸딩캠프에서도 해야죠. 자꾸 욕심이 나네요.
푸딩 : 빨리 자리 마련해드리겠습니다.
: 근데 이 인터뷰 왜 하는 거라고 했죠? 사전 인터뷰하고 비슷한 흐름으로 가는데? 사전 인터뷰만큼 인터뷰 기획이 치밀하게 느껴지질 않아.
푸딩 : 어허! 이 사람이... 험험.

제품 형상화가 되지 않는 요구사항을 제품 형상화하는 주체가 PM

푸딩 : 사전 인터뷰는 행사 발표 때 뭔가 주장을 하려면 그 주장을 하는 내가 누군지를 먼저 설명을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짧게 소개하기가 모호하단 말이죠. 그렇다고 길게 하자니 안 그래도 발표 시간도 부족한데 발표 주제와 직접 관련 없는 내 소개를 시간을 많이 쓰는 건 고민스럽고. 그래서 사전 인터뷰로 연사자에 대해 이만큼, 무려 A4 용지 25장에 달하는 컨텐츠로 소개해주어서 연사자가 발표 컨텐츠를 더 알차게 채우시라는 의도였고요. 다룰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고.
푸딩 : 사후 인터뷰는 Q&A에서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연사자와 청자가 함께 나눴으면 좋겠다고 넌지시 손을 내미는 데 목적이 있어요. 질문 하나로 이 정도로 진행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청중이 이런 우리의 공간에 질문을 남겼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부담없이 질문을 남기는 데 참고할 질문과 답변 예시를 하나 제시해주실래요? 이런 질문을 남기면 당신도 좋고, 다른 사람이게도, 우리 모두에게 유익할 겁니다, 라고 영업하는 거죠.
: 발표 끝나고 라이트닝톡을 할 때, 그 자리에 이런 얘기들이 나왔어도 재밌을 거라는 생각이 든 게 있어요. 지금 우리가 얘기 나눈 것과 비슷한 거거든요. 오히려 그날의 발표가 끝나고 PRD 얘기가 나오기에는 제가 그 앞에 빌드업이 좀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PRD 얘기를 중심으로 한 게 아니었으니까.
푸딩 : 사인오프 얘기가 많았죠.
: 그렇죠. 그래서 좀 구체적인 상황을 누군가가 얘기했더라면 그걸로 많은 사람들과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예를 들면, 내가 지금 회사에서 무엇때문에 사인오프를 받아야 되는 거예요. “저 CPO한테 가서 이 사인오프를 받아와야 돼” 라고 하는 상황. 그런 상황이거나. 또는 두 번째로 생각했던 부분들은 “이 요구사항이라고 하는 것은 누가 만드는 거냐”, “요구사항은 누가 어떻게 만드는 거냐”, 에 관한 질문이 나왔어도 저는 굉장히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그러니까 지금 보면 요구사항이 있고, “요구사항이 밋(meet)하지 않았어”. “제품이 밋하지 않았어”, 라고 얘기를 했고, 그러니까 “요구사항을 사인오프를 받아와”, 라고 요구를 하고 있는, 이게 프로세스로 강요되고 있는 상황인데, “그 요구사항을 수집하고 만드는 주체가 누구냐”, 라는 질문이 나왔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질문은 반드시, 그 답은 PM이 하는 고객 인터뷰로 이어지게 되거든요.
: 그러니까 요구사항이라고 하는 건,
  • 영업사원을 통해서 혹은 내 고객사의 담당자의 불만이 접수된,
  • 사용자의 컴플레인이 접수된,
  • 경영진의 어떤 경영 목표가 접수된 상황
보통 우리가 그런 상황들로부터 제품 개발이 시작되거든요. 제일 처음에는.
푸딩 : 그렇죠.
: 그 상황에는 아무런 요구사항도 존재하지 않은 거예요. 예를 들면, “내가 우리 업계의 넘버원이 되겠어”, 이건 요구사항이 아니잖아. “지금 트래픽을 5배를 올려야 돼”, 이건 제품 요구사항이 아니죠.
푸딩 : 토이스토리 2기 모집이 잘 돼야 해! 이것도 요구사항이 아니고요.
: 제가 방심했습니다. 이 타이밍에 홍보를 넣다니.
: 아무튼, 경영 요구사항일 수도 있고, 매출 2배를 해야 돼, 같은 재무의 요구사항일 수도 있고. 이게 제품 요구사항으로 올려면 가장 형상처럼, 증상처럼 떠다니는 그런 것들에서부터, 내가 제품 요구사항을 형상화하고 캐치해 나가는 주체는 누구냐, 그거는 반드시 PM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푸딩 : 제품 형상화가 되지 않는 요구사항을 제품 형상화하는 주체가 PM이라는 말씀이죠?
: 그렇죠. 깔끔한데?
푸딩 : 홍보했으니 밥값한 겁니다. 여튼, 그런 점에서 그 그네 이미지를 장표에 넣으신 거군요.
: 그게 강연 자료에 나무 그네 그림을 설명할 때 사실은 더 할 수 있는 얘기 중에 하나인데, 나무 그네 그림에서 고객이 요구한 것을 PM이 형상화하는 과정이 분명히 앞에 있어요. 근데 그 부분이 잘못됐기 때문에 뒤가 안 되는 부분을 설명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그 질문, 그 요구사항, 예를 들어 영업팀에서 이러저런 문제가 있다 그래서 제품에서 이렇게 이렇게 만들어 줬는데 “뭐가 안 돼서 못 쓴다고 그래요”, “실컷 만들어 줬더니 안 써요” 이런 얘기들이 주니어 레벨에서라면 되게 나오기 좋은 질문이었을 것 같아요.
푸딩 : 근데 지금까지 얘기대로라면 주니어보다는 쓴맛 단맛 짠맛 더 많이 맛본 경력자나 시니어가 더 좋아할 내용 같은데요?
: 나 주니어들하고 하고 강연하고 싶엉.
푸딩 : 그러니까요. 주니어 시장이 훨씬 넓은데.
: 어흣, 어떡하지? 헛헛헛허허.
푸딩 : 이제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 남기겠습니다. 근데 사실 지금 얘기를 다 해주셨어. 제가 할 만한 질문들에 대해서 질문이 몇 개 다 있는데, 답이 다 포함되어 버려가지고.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나
: 또 하면 되지, 흐흥흥.
푸딩 : 혹시 이거와 연계해서 후속으로 만약에 컨퍼런스 진짜로 또 연다
: 역시 또 여는 겁니까? 폴(Paul)이 지고 마는 것인가?
푸딩 : 할 건데?! 또 할 건데? 막 100번 할 건데?
푸딩 : 아무튼 만약에 컨퍼런스를 또 연다, 그러면 이번 콴 발표의 후속으로 어떤 주제, 어떤 키워드를 꼽으실 것 같아요? 콴의 이 발표를 들은 사람들을 대상으로요.
: 어... 후속으로 간다고 하면 희망차고 밝은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보다는 성장하지 못하고 암울하고 지옥에 빠져있는 PM들을 꼬실 수 있는 제목을 던져 가지고.
푸딩 : 그놈의 제목! 입문하는 PM! 성장하는 PM! 크크큣큭큿.
: 허후힛헛헛. 그래서 니네가 지금 이런 문제를 겪고 있는 거는 이러 이런 것 때문이야, 라고 얘기하는 세션을 하나 해볼 만한 것 같고. 여기서 벗어나고 싶으면 돈을 내.
푸딩 : 이젠 아주 대놓고 영업을 하시네. 멋져요, 연사님! 작당은 따로 얘기 나누기로 하시죠. 인터뷰에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 수고하셨습니다.
권준호(콴) 연사자의 발표. 입문하는 PM, 성장하는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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