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학습에 미치는 영향
뇌과학적 관점: 글쓰기와 뇌 활성화
글을 쓰는 행위는 여러 뇌 영역을 활성화합니다. 예를 들어, 전전두엽(전두엽 앞부분)은 글의 구조를 잡고 단어 선택을 계획하는 데 관여하고, 해마는 기억한 정보를 불러오며, 브로카 영역(좌측 하전두회)은 문장을 구성하는 언어 생성에 기여한다고 합니다. 뇌 영상(fMRI) 연구에 따르면 창의적인 글쓰기를 할 때 해마를 비롯한 기억 회상 영역과 언어 관련 영역이 활발히 협응하여 작동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글쓰기가 단순 암기와는 달리, 기억의 인출과 재구성 과정을 수반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한편 뇌파(EEG) 연구에서는 손 필기가 타이핑보다 뇌 연결성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키보드를 누를 때보다 손으로 글을 쓸 때 뇌의 넓은 영역에서 동시다발적인 세타(θ)/알파(α) 파대 연결이 증가하였고, 연구자들은 이러한 광범위한 뇌 연결 패턴이 학습 촉진과 관련 있다고 해석합니다.
인지심리학적 관점: 능동적 회상과 생성 효과
글쓰기는 능동적 학습(active learning)의 대표적인 형태로, 인지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출 연습(retrieval practice)과 생성 효과(generation effect)를 수행하게 합니다. 정보를 읽고 지나가는 대신, 머릿속에서 끄집어내어 자신의 말로 써보는 행위 자체가 강력한 학습입니다. 실제 연구들은 이러한 능동 회상이 장기 기억에 매우 효과적임을 보여줍니다. 실은 지난 연재 편에서 반복해서 언급되는 내용이지요.
예를 들어, 과학 텍스트를 읽은 뒤, 내용을 쓰면서 회상한 학생들이 개념 지도를 그리거나 다시 읽기만 한 학생들보다 시험 성적이 높게 나왔습니다. 중요한 개념을 직접 설명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 학습자는 지식을 재구조화하며 기억 흔적을 강화합니다(3 Active Recall Techniques Everyone Should Know - Edumentors). 2010년대의 한 연구에서는 학생들이 스스로 개념도를 작성했을 때, 주어진 개념도를 수동적으로 관찰한 경우보다 기억 지속률이 38% 향상되었다는 결과를 보고했습니다.
이처럼 글로 써보는 생성 활동은 단순 암기에 비해 깊은 처리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학습 내용을 오래 유지하게 돕습니다. 또한 글쓰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자기 점검은 메타인지 향상으로 이어져, 무엇을 모르는지 깨닫고 다시 학습하는 피드백 루프를 형성하지요. 쓰면서 배우기는 효과적인 학습 원리 중 하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손 필기 vs. 타이핑: 기억과 이해도의 차이

많은 연구에서 손으로 필기하는 것과 키보드로 타이핑하는 것의 학습 효과 차이가 보고되었습니다([1], [2]). 손 필기가 더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인지적 노력 면에서 오히려 그 점이 장점으로 작용합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진행한 한 유명한 실험에서는 노트북으로 강의 내용을 속기한 학생들보다 손으로 노트 필기한 학생들이 개념 이해도와 기억력 시험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타이핑을 하는 경우 내용 대부분을 빠르게 받아적을 수 있으나, 이러한 속기는 뇌의 처리가 덜 개입되어 무의미한 전사(mindless transcription)가 되기 쉽습니다. 반면 손 필기는 속도가 느린 만큼 핵심을 추려써야 하고, 자신의 말로 요약하게 되어 비판적 사고와 요약 능력이 동원됩니다. 이로 인해 필기한 학생들이 개념을 더 잘 이해하고 기억도 오래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다른 연구에서는 장기 기억 면에서 손 필기가 키보드 입력보다 25% 이상 더 높은 뇌 활성화를 이끌어내는 것을 fMRI로 보여주었는데, 연구진은 종이에 손으로 쓰면서 생기는 고유한 공간적, 촉각적 단서가 기억을 강화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일본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종이 다이어리에 일정 계획을 손으로 적은 그룹이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에 입력한 그룹보다 기억 재생 시 뇌 활성도가 훨씬 높고 정보 재구성 속도도 빨랐습니다.
이처럼 장기 기억과 이해도 측면에서 손 필기가 우위를 보이며, 필기 과정에서 생성된 개인만의 필체와 구조가 나중에 기억을 되살리는 효과적인 단서로 작용한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물론 타이핑도 속도와 편의성 면에서 장점이 있지만,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중요한 내용은 한번 손으로 써보는 습관이 권장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을 발산할 때나 학습한 것을 떠올릴 때(복습) 이면지에 악필로 뭔가를 쓰거나 그리는 걸 선호합니다.
마치며
학습법을 학습할수록 어렵게 학습하는 것이 학습 효과가 좋다는 원리는 빠지지 않고 늘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손 필기와 글 짓기를 어렵게 학습하는 방법으로만 단순화할 순 없지만, 복합적인 인지 부하를 일으키는 것은 분명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글 짓기와 학습 관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