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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컨텐츠는 푸딩캠프가 주최하는 학습과 성장 컨퍼런스 2024에 연사자로 참여하는 권준호(콴)님을 인터뷰한 내용을 다루는 컨텐츠입니다. 재밌게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연사자의 일면을 부각하여 각색한 것임을 알립니다.
1장. 그 어느 곳에서든 PRD를 외치는 사람
풍문으로 들었소, 이곳이 후끈하다면서요?
푸딩캠프(이하 푸딩) : 안녕하세요, 콴.
권준호(이하 콴) : 한날, 오랜만이에요.
푸딩 : 푸딩캠프가 주최하는 학습과 성장 컨퍼런스 2024에서 연사자 1호세요. 제가 요즘에 소셜 매체에 뭘 올려도 그 흔한 좋아요 반응도 거의 못받는 와중에, 제가 컨퍼런스 열 거라는 떡밥을 조금씩 풀 때마다 떡밥을 계속 물어주신 고마운 분이잖아요. 제가 뭘 어떻게 열 줄 알고 관심을 보이며 참여까지 하신 건가요? 그냥 까페에 모여 도란 도란 얘기 나눌지도 모르는데.
콴 : 백수는 심심해서 누가 불러주면 잘 놀러갑니다. 생각보다 갈 데가 그렇게 많지 않아요.
푸딩 : 무슨 소리.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콴 : 바로 그건데, 한가한 것 같지만 막상 어디 놀러가려고 하면 일정이 꼬이기 일쑤라 잘 안 돼요. 백수인데 일주일에 일정을 열두 개씩은 소화하다보니 더 그래요. 놀러갈 의지는 충만한데 이상하게 가질 못하네. 그런데 이런 행사는 날짜가 정해져 있잖아. 당연히 놀러가죠.
푸딩 : 백수인 걸 감안해도 너무 바쁜데?
콴 : 어찌됐든 이 분야에서 먹고 살려면 어딘가에서 자꾸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한 7월 정도부터 놀고 있으니 두 달 정도 됐네요. 예전에 제게 뭔가 직업이 있으면 불러주는 사람이 많았어서 불러주는 것에 대응하기만 해도 일정이 가득찼던 생활을 했는데.
푸딩 : 놀다보니 뭔가 하겠다는 생각이 든 거군요. 무슨 활동을 하시려고요?
콴 : 예전엔 투자 심사하고 사업 평가하는 일이 많았는데, 요즘엔 PRD를 중심으로 제품 개발 과정, 영어로 Product Development Process라고 부르는 걸 강의하고 있어요. 이걸 더 여러 곳에 소개하는 활동을 하려고요. 뉴스레터도 쓰고, 글도 쓰고, 강의도 나가서 PRD를 왜 쓰는가, 어떻게 쓰는가, 검수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 이런 걸 소개하고 설명하는 활동이죠.
푸딩 : PRD가 뭔가요? 제품 개발 과정이라면 PDP가 되는데, PRD는 뭘 줄인건지 감이 잘 안 오네요.
콴 : Product Requirement Document.
콴 : 이 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건 PRD를 잘 모르니 필요성을 못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고 뭔지도 모르니 당연히 저한테 연락조차 오지 않는 겁니다.
푸딩 : 아항~♥️ 간단히 말해서 푸딩캠프 컨퍼런스에 나와서 영업하겠다는 거군요!
콴 : 하하하하, 이 사람. 그렇죠. ♥️
푸딩 : 인터뷰 해주셔서 감ㅅ
콴 : 조금 더 PRD에 대해 들어보지 않겠는가!ㅏ합니다.
푸딩 : 평양냉면이나 고기리에 있는 막국수 한 번 사지 않고 어딜! 그리고 멋대로 마크다운 문법 끌어오지 마요. 흥. 조금 더 얘기해보시죠.
콴 : PRD를 더 알리고 자리를 마련해야겠다, 기회가 있으면 열심히 나가야겠다, 마이크가 주어지면 꼭 잡고 놓지 말아야겠다, 생각하던 차에 컨퍼런스를 여시길래 하겠다고 한 겁니다.
푸딩 : 앞에 하던 말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거잖아!
콴 : 하지만 이제부터 달라집니다. 지난 번에 원티드도 컨퍼런스를 열길래 자리를 잡고 나갔어요. 그때도 비슷한 생각으로 했죠.
푸딩 : 오, 원티드 얘기. 해보세요. 후원사로 모시고 싶단 말이에요. 우리랑 궁합이 참 좋은데.
콴 : 끝입니다.
푸딩 : 아항~♥️ 그러니까 체급이 훨씬 큰 원티드에도 같은 생각으로 나갔으니, 쬐끄만한 푸딩캠프는 군말없이 넙죽 받으라? 우이씨.
출처 : 디즈니
콴 : 왜 PRD를 소개하고 싶은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자, 자, 들어보시죠. 이유는 복합적이에요?
콴 : 제가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엑셀러레이터를 그만두고 다시 제품에서 일한 지 4~5년 정도 됐어요. 그 사이에 어느 회사에서 일도 하고, 다른 회사에 가서 얘기도 나누고 상담도 하다보니 스타트업들이 대부분 유사한 문제를 겪는다는 걸 인식했어요. 그 문제가 제일 큰 문제라고 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풀겠다는 자세는 필요하단 말이에요. 근데 어떻게 풀겠다는 목표나 이해, 관심이 별로 없어요. 문제가 드러나면 너가 잘해봐, 이렇게 다른 조직에 말하는 걸로 끝나요.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풀려는 의지가 없어요. 어느 조직은 그러지 말고 처리해야 한다 목소리를 내보기도 하고, 일정 부분 작업해보기도 하지만, 조직 차원에서 변화하는 힘으로 커지긴 어려워요.
푸딩 : 종종 보는 모습이죠.
콴 : 그 모습을 보고서 조직에 들어가서 일하는 건 이제 그만하자, 라고 생각했어요. 또, 조직에 들어가서 월급 잘 받고 있어봐야 내가 딱히 월급만큼 기여하지 못하겠다는 생각도 몇 번 했고요.
푸딩 : 왜요?
콴 : 저한테 연봉 많이 주면서 뭔가 하길 원하는데, 막상 제가 생각하는 방식을 전개하려고 하면 조직의 관성이 작용해 제 기대만큼 효용을 내지 못했어요. 조직 안에서 하는 일의 절반 정도는 조직 관리 업무이고, 실질적인 일을 하는 건 별로 없더군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체계와 방식을 조직 안에서 적용(install)하지 말고 조직 밖에서, 가능하면 이미 다 커서 뼈대 굵어진 기업보다는 되게 초기에 있는 기업에 장착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어요.
푸딩 : 근데 초기 스타트업에 장착하기 어렵지 않겠어요? 하루 하루 살아남기도 버거운 사람 귀에 PRD라는 말이 들리겠냐는 거죠.
콴 : 제가 투자하는 초기 스타트업에 요구하고 기대하는 것이 PRD를 잘 갖춰야 한다는 점이에요.
푸딩 : 아, 돈도 주고 방법론도 가르쳐주고? 투자조합을 운영하시는 맥락이 이제 이해가네요. 엑셀러레이터 느낌이 들기도 하고.
콴 : 큰 회사에서 높은 직책을 갖는 것도 되게 자랑스러울 수 있고 영예로울 수도 있죠. 제가 옛날에 만들었던 삼성페이처럼 대단한 제품을 만들면 각광받고 굉장히 기쁘고 보람찬 일이긴 해요. 한편, 이제 남아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자랑스러운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생각해보니 제가 제품을 만드는 과정, 그리고 제품 문화를 특정 회사에 적을 두지 않고 조직 밖에서 장착시켜 성과를 내도록 기여한다면 무척 자랑스럽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 나이대가 되면 마지막 직장생활 내지는 마지막 조직생활을 의식하는 때가 오잖아요. 내가 몇 년 더 해먹겠나 싶기도 하고.
푸딩 : 왜 한기가 들지. 아, 코 시려.
콴 : 요즘같은 시기로 보면 한 5년 더 하지 않을까? 여차하면 10년까지 가능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10년 동안 월급생활자로 사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나 스스로가 인정하는 부가가치로 기여하고, 그 일을 자랑스러워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삼성페이를 만들며 깨달은 것
푸딩 : 공감합니다. 아까 하신 말씀 중에 등장해서 말인데,
콴 : 뭘 물어볼지 예상되네요.
푸딩 : 흐흐. 삼성페이 때문에 갤럭시를 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고객 충성도가 엄청난 제품이잖아요. 삼성엔 삼성페이 만들러 들어가신 겁니까, 아니면 들어간 뒤에 삼성페이 프로젝트를 맡은 건가요? 삼성에 들어간 이유는 뭡니까?
콴 : 삼성에 들어가는데 이유가 필요한 경우도 있어요? 삼성이 부르는데 한날은 안 들어갈 거예요?
푸딩 : 음, 그런가? 콴이니까 그렇죠.
콴 : 그도 그렇네요. 저는 지금도 아이폰을 쓰고, 그 당시에도 아이폰을 썼어요.
푸딩 : 삼성페이 만들던 시기에도?
콴 : 삼성페이 만들 때도. 제가 삼성폰을 테스트폰으로만 써봤어요. 그 정도로 저와 삼성은 개인으로나 일적으로 엮인 일이 없었어요. 그렇긴 한데, 삼성에 들어가던 시기엔 사업 망하고, 갈 데도, 오라는 데도 없던 저를 누군가가 삼성에 추천해줬고, 정말 운좋게 받아들여진 거죠.
푸딩 : 어떤 운이길래 추천해줬더니 입사가 받아들여진 겁니까? 전 삼성전자 A/S 받으러 가기도 험난하던데.
콴 : 운이 좋았다고 할 수밖에. 제가 예전에 한날과 만난 게 게임 내 광고 사업할 때잖아요.
푸딩 : 그렇죠. 전 게임 내 광고에 전혀 관심 없던 때.
콴 : ...
푸딩 : 아니, 콴이야 좋죠. 단지 저는 제 게임에 어떤 광고가 나올지 모르는 상황이 싫었던 거예요.
콴 : 여튼 제가 삼성에 입사할 당시에 삼성전자 안에 광고 사업을 하는 부서가 있었어요. 제가 관련 경력이 있으니 그 부서로 뽑혀 들어간 거죠. 근데 입사하자마자 부서가 통채로 날아가서 없어졌어요. 있었는데 없어요.
푸딩 : 이미 입사는 마친 상태였고요?
콴 : 네
푸딩 : 워어, 천만 다행이네요. 그럼 중간에 붕 뜬 상태에서 삼성페이 부서로 가게 된 거였군요! 조직이 해체되면 대개 온갖 곳에 배치되는 걸 감안하면, 운이 정말 좋았네요.
콴 : 맞아요. 근데 요즘엔 삼성페이 위상이 대단하지만, 당시에는 아웃사이더들이 쫓겨나서 오는 조직 같았어요.
출처 : 삼성전자
푸딩 : 진짜요? 그런 조직에서 삼성페이가 나오다니 앞날을 전혀 알 수 없네요. 그럼 그런 조직 안에서 잘 적응했어요?
콴 : 수습기간 끝날만한 시기였나? 유명하신 상무님이 계신데, 그 분이랑 어떤 일로 의견이 부딪히고.
푸딩 : 들이받은 건 아니죠?
콴 : 그건 아니지만 위기라면 위기였죠. 그런데 그 일이 있고 그다음 주에 삼성페이쪽에서 인력 요청이 있었다나봐요. 그래서 얘 그 조직으로 보내라, 라고 해서 삼성페이로 쫓겨난 겁니다. 그 당시에 갈 때는 쫓겨나는 입장이었는데, 가봤더니 정말 잘 간 거지. 그렇게 생각해요. 하늘이 도왔어요.
푸딩 : 거듭 쫓겨났다는 표현을 쓰는 걸 보니 당시 삼성페이 조직의 위상을 알겠네요. 쫓겨난 사람이 오는 곳. 그나저나 뭔가 일이 잘 풀린 분들 하는 얘기는 다 이런 식이야. 운이 좋았다.
콴 : 근데 제가 능력을 발휘한다고 영향력이 미치는 그런 상황이 아니잖아요.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입사 자체도 운이 좋았는데, 심지어 한 번 입사 취소되었다가 부활한 거였어요. 모든 일에 운이 연속으로 뒤따른 건 확실해요. 그렇지만 삼성페이 조직에 대해 들리는 말이 있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쭈구리 조직인데 거기서 내가 PM으로 노력한다고 될 게 있나?
푸딩 : 상무님과 의견 충돌했다고 한 걸 보면 콴만의 제품을 제작하는 관점이나 철학이 있었고, 그걸 제품 제작 과정에 녹여내고 싶으셨던 것 같은데, 삼성페이에서는 그게 잘 됐나요? 삼성페이는 어떤 업무 방식을 지향했어요? 외부에 알려진 삼성의 이미지가 있잖아요.
콴 : 비록 제가 삼성페이로 쫓겨난 것이고 삼성페이 조직도 안 받을 수 없어서 받기는 했지만, 별로 환영하진 않았어요. 너는 개발자도 아니고 대체 뭘 할 수 있는데? 느낌이랄까요. 삼성에 저같은 사람이 입사하면 마케터 직군이에요. M직군. “네가 개발에 대해 뭘 알며, 뭘 한다고?” 이런 상황인데, 전 정식 조직에 속한 것도 아니었어요. 저는 PM인데 그 당시에 삼성페이 조직에서 PM은 TF 조직이었거든요.
푸딩 : 직군이 아니라 임시 조직에서 일하는 스태프군요.
콴 : PM이란 직군도 없이 TF로 끌어 모아놓은 임시 조직이었으니 네가 어떻게 삼성페이에서 PM 역할을 하느냐는 말이 나올 법 하죠? 근데 제가 가만히 이 조직을 지켜보니 너무 익숙한 광경이었어요. 그건 바로, 창업한 사람들이 개발팀이랑 일하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는 거예요. 그게 바로 PM이 하는 일인 거죠. 이거 어떻게 돼가고 있어? 어떻게 만들고 있어? 이거 왜 이래? 이거 왜 안 돼? 언제까지 할거야? 그런 일.
푸딩 : 아아, TF조직이라는 맥락이 이해가네요.
콴 : 이거 어떻게 해야 돼? 이렇게 할 거고 저렇게 할 거고 우당탕탕. 저는 회사 망하고나서 그런 광경을 보니 일이 굉장히 익숙한 거예요.
푸딩 : 삼성전자 내 삼성페이 조직에서 일하는 PM도 익히 알던 PM의 일을 하는구나!
콴 : 그런 상황인 거예요. 그래서 저는 일이 무척 쉬웠고, 재밌고, 심지어 신났어요. 회사가 망할 때엔 개발자가 제대로 있기를 하나, 내 말을 들어주기를 하나,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되는 게 있기를 하나. 근데 여기는 모든 게 다 되는 거예요.
푸딩 : 낡고 다 허물어지는 곳에 있다가
콴 : 에이. 그건 좀 심하지.
푸딩 : 안 되는 게 지천인 환경에 있다가 말하면 막 UI 따박따박 나오고, 구현이 하늘에서 돈 떨어지듯 나오는 환경에 갔으니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겠네요.
콴 : 제가 하고 싶어 하기만 하면 다 할 수 있었어요. 얼마나 재밌겠어요. 비인간적인 노동 시간의 상징으로 주 100시간에 대해 사람들이 말하곤 하는데, 그때 저는 사무실에 찍힌 시간이 90시간을 넘겼어요. 이틀 정도 밤새는 건 아무 일도 아니었어요. 월요일부터 토요일 새벽까지 80~90시간을 일했는데, 저만 그렇게 일하는 게 아니라 삼성페이에 있던 개발팀을 포함해 디자인, UX/UI팀까지 다 그 모양 그 꼬ㄹ.
푸딩 : 거기까지! 야근, 철야 이야기에 언제까지 젖어 있을 거죠? 앞서 게시한
도 그렇고,
도 그렇고, 자꾸 힘들게 일한 얘기를 추억처럼 얘기해서 이젠 신경쓰인단 말이에요. 여러분, 주 40시간을 지키세요.
콴 : 아니, 아직 한참 남았어요. 목요일 밤 새벽에 전화하면 디자인팀이 사무실로 미팅하러 와요. 다들 그랬고 그게 일반적이었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힘들지도 않았어요. 그렇게 하면서도 일정은 거의 밀리지 않았어요. 그만한 조직에서 일정도 딱딱 맞춰 나오고, 업무 티켓도 차곡차곡 들어가 돌고, 데모도 항상 제 일정에 제대로 소화했어요. 거기서 출시까지 제가 여섯 버전을 내면서 일정을 단 한 번 밀렸어요. 제가 나머지 팀을 다 만났는데, 삼성에 있는 조직은 그런 게 되게 당연한 거였어요. 가령, 쟤는 하드웨어 담당 조직이니 밀리면 난리가 나는 거예요.
푸딩 : 어우, 하드웨어에서 일정 지연은 상상만 해도 소름 돋네요.
콴 : 그래서 저는 삼성에서 굉장히 즐겁게 일을 했어요.
닥치고 제품형상화
콴 : 삼성에 있을 때 저는 밖에 있는 선수들이 되게 잘하고 우리가 못하는 줄 알았어요. 밖에 있는 선수들은 너무 훌륭하고 대단하고, 그러니 만날 기사 나오겠지, 이랬어요. 근데 막상 삼성 밖으로 나가봤더니 웬걸? 어디가도 삼성 선수들만큼 개발하는 애들을 볼 수가 없어요. 저렇게 일해도 괜찮나?
푸딩 : 근데 삼성 출신도 삼성 밖에 나오면 비슷해지는 사례를 제가 좀 아는데, 왜 그런 거죠? 대기업 물이 염색될 정도로 들어 도무지 빼지 못한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듣고.
콴 : 삼성전자에서 했던 경험을 돌아보면 말이죠, 제가 했던 건 하던 거니까 한 거예요. 제가 어떻게 하겠다는 의지가 있다거나 설계했던 게 아니라 조직 체계 차원에서 이렇게 하는 거라고 했고, 그리 배워서 했던 거였어요. 나중에 그때를 복기해보며 아~ 이거는 그래서 이랬고, 저거는 이래서 저랬구나 라는 걸 알게 된 거죠.
푸딩 : 자꾸 대명사랑 접속사 쓰면 인공지능 녹취 기능이 바보 되는 거 알아요? 그럼 제가 정말 힘들어집니다?!
콴 : 그 당시에 삼성전자 마운틴뷰 오피스쪽에서
을 받고 이걸 정석대로 우리한테 갖다줬어요. 이게 애자일 코칭 수업 같은 거였는데, 그냥 절차대로 이렇게 하고, 저렇게 하게 하더라고요. 뭘 하는지도 모르고 기계적으로 시키는대로 하는 거예요. 물론 하는 과정에는 불만이 많아요. 투덜대는데 그러든 말든 닥치고 해야 해요. 그 중에 불필요한 것도 있고 이상한 것도 물론 있겠지만, 큰 맥락에서는 되게 잘 맞아돌아가요.
푸딩 : 대체로 개발자들이 생소하거나 자신에게 안 맞는 개발방법론에 저항하는 편인데, 잘 자리잡았어요?
콴 : 삼성에 다니는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티켓 정리하는 시간에 코드 한 줄 더 짜겠다는 말은 나오더라고요. 그런 불만들, 정리되는 데 딱 3개월 걸렸어요. 좋든 싫든 얘도 하고 쟤도 하고 그도 하고, 불만은 있지만 닥치고 하다보니 어~ 어~ 하다 자리잡고 돌아가는 거예요. 일단 정석대로 돌아가는 체계가 효과를 내면 이대로 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아요. 이 체계가 잘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니까요.
출처 : 모름
푸딩 : 닥치고 해, 이걸 좀 더 있어봄지컬하게 표현하면 뭐라고 하시겠어요?
콴 : 삼성에서 나와서 그때를 회상하며 생각해봤죠. 그 요체가 뭘까. 저는 그 현상을 제품의 형상화라고 부릅니다.
푸딩 : 닥치고 해,가 직관적이긴 하군요.
콴 : 제품의 형상화라고 부르는데, 흔히 스타트업에서 제품 개발하는 과정을 상상해보면 이런 거예요. 대표가 어디가서 누구를 만나고 와.
푸딩 : 그렇지. 대표가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들어오는 데에서 서사가 시작되죠.
콴 : 또는 책을 한 번 읽고 왔어.
푸딩 : 그놈의 책.
콴 : 또는 얘기를 들었어.
푸딩 : 읽고 듣고. 그래요. 뉴런 중 약 33%는 시청각에 관여하긴 하죠.
콴 : 사람들을 회의실에 모아서는 “요새 이런 걸 해야해, 이렇게 하면 시장을 찢어버릴거야”라고 이야기해요. 그러면서 화이트보드에 뭔가를 막 그려. 그리고 우르릉쾅쾅 우당탕탕하고는 “자, 이제 개발합시다” 그러면 뭘 해야 하죠? 한날도 개발자니까 알 거 아냐. 일이 돌아가겠냐고요.
푸딩 : 저는 현금 드리븐 개발을 해서 성의가 충분하면 발가락으로 대충 그린 그림을 기반으로도 만들어드리는데요?
콴 : 조직 안에서, 조직 안에서.
푸딩 : 어우, 못하죠. 적어도 손은 써줘야죠.
콴 : 아무것도 못해요. 대부분 그런 상태인 거죠.
푸딩 : 하지만 발로 대충 슥슥 그린 것일지라도 어찌 저찌 뭔가 만들잖아요.
콴 : 대표가 화이트보드에 그린 걸 막내 디자이너가,
푸딩 : 표현 조심.
콴 : 남의 말 잘 듣는 착한 막내 디자이너가 비슷한 앱의 스크린샷을 따기 시작합니다. 프론트엔드에서 작업할 화면을 지맘대로 따기 시작하고요. 왜 지맘대로냐. 다른 사람들은 한 귀로 흘려보내서 관심이 없거든. 그림이 나왔으니 어쨌든 일은 해야하니 화면정의서를 만들고, 그걸 기반으로 인터페이스를 뽑고 데이터베이스를 설계하죠. 그렇게 어찌 저찌 흘러가는 거예요. 에잇, 다 아는 얘기잖아. 재미없게 반응이 왜 이래! 하나도 모르는 사람처럼!
푸딩 : 안다고 넙죽 머리 들이밀면 인터뷰 컨텐츠를 어떻게 만들어요. 모르는 사람이 된 것처럼 멀뚱히 앉아 두 눈 반짝이며 인터뷰해야지. 모르는 사람에게 말한다 생각하고 계속 하세요.
콴 : 돌이켜보면 2000년대쯤 웹에이전시에서 SI 개발할 때 이렇게 하는 곳이 많았거든요. 화면정의서를 PPT로 한 300장 만들어서 결제 받고나면 그제서야 개발했단 말이에요. 여전히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하죠. 삼성전자엔 그 과정이 없었어요. 삼성페이를 개발할 때 우린 그 과정없이 뭘 했느냐. 이 기능을 사용할 페르소나가 뭔지 고민하고, 고민 끝에 정리된 페르소나에 따라 사용자 스토리와 시나리오가 만들어졌어요. 시나리오 몇 개에 사용사례(usecase)가 몇 개 나오고, 사용사례를 설명하는 문장들이 수십개씩 나오는 식이었어요.
출처 : Total Quality Management
푸딩 : 저도 사용자 스토리 기반으로 일하는 편이예요. 금방 싫증을 느껴서 오래 붙들고 작성하진 못하지만. 여튼 그렇게 문장이 나오면 문장 단위에 맞춰 업무 단위를 티켓으로 뽑지요? 사용자 스토리를 쓰고, 그걸로 티켓을 뽑아서 개발하고 일정을 관리한다는 걸 삼성이라는 대기업에서 한다니 신선하게 들려요.
콴 : 제가 아는 삼성 내 조직에서는 이걸 처음 할 때였고, 그걸 처음하는 조직에 제가 운좋게 들어간 거였어요. 당시에 저뿐만 아니라 PM TF조직과 함께 일하는 개발팀이나 디자인팀 모두 이런 일하는 방식이 뭔지 몰랐어요.
푸딩 : 그럼 혹시 그 이후에 PM이라는 직군이 신설된 거 아니에요?
콴 : 그전에도 PM 역할이 없던 건 아니었어요. 그 전에는 코디네이터라고 불렀고요. 기획자와 영업, 개발 사이에서 조정하고 조율해서 코디네이터라 불린 거죠.
푸딩 : 제품을 중심으로 이끌어가는 느낌은 아니네요.
콴 : 한때 실리콘밸리엔 기획자가 없다라는 말이 나오던 시기에 코디네이터라는 직군이 존재했고, PM이 하는 역할과 비슷하게 일을 해왔어요. 코디네이터가 약간 지원하는(supportive) 역할이었다면, 지원을 넘어서 제품을 이끌고가는 역할을 하는 PM이라는 사람은 우리가 만들 제품이 어떤 형상을 갖고 어떤 고객이 어떻게 사용하여 어떤 가치를 갖게 되는지 방향을 잡도록 이끌어가는 역할이죠.
콴 : 제가 요구하는 제품 개발 과정은 “내가 만들 제품은 이렇게 생겼어. 이렇게 작동할거야”라고 설명을 하는데, 그 설명은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모두 나와 동일한 생각을 하는 거예요. 최대한 동일하게.
콴 : 그 다음은 익히 우리가 아는 과정을 거치겠죠. 디자이너는 제품 개발 과정에 맞춰 설계하고, 그 작업물에 대해 PM과 이야기 나누며 맞네 틀리네를 따지고, 그렇게 산출된 작업물을 기반으로 개발자는 이걸 하려고 하면 뭐가 필요하겠네, 어떤 컴포넌트가, 어떤 팩터가, 뭐가 필요하겠네를 같이 논하고.
푸딩 : 그 과정에 아까 말씀하신 사용자 스토리, 시나리오 등이 포함되는 거죠? 작업 티켓 단위까지 나오는.
콴 : 그렇죠. 그런 단위로 일을 하고, QA도 작업 티켓 단위로 진행하는 거예요. 이 문장은 통과, 이 문장은 불가, 이러면서 QA 계획을 잡는 거죠.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든 제품이 훨씬 빈틈이 없어요. 빈틈을 많이 막을 수 있고. 한창 개발하다가 갑자기 역진적인 의사 결정이 이뤄지기 일쑤인데, 그런 문제가 발생할 확률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낮출 수 있다는 걸 그때 배웠어요.
콴 : 삼성 밖에 나와서 본 회사 중에 야놀자도 마찬가지지만.
푸딩 : 잠깐?! 뭡니까, 갑자기? 어휴, 놀래라. 허락 받은 거 아니면 직접 언급은 우리 하지 말죠. 허허.
콴 : 다른 사례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푸딩 : 여보세요?
콴 : 아, 진짜. 여기도 다녔던 회사예요.
푸딩 : 죄송합니다. 제가 무서워서 그만. 계속 해주소서.
콴 : “이거 개발하는 데 얼마나 걸려?”
“6개월.”
“왜 6개월이야?”
“예전에 비슷한 거 해본 것 같아요.”
“그럼 언제 시작할 지 알려줘.”
“6개월 후에요.”
그렇게 6개월 동안 개발하고 나온 제품을 영업팀에서 시험 사용해보면.
푸딩 : 벌써 1년이군요. 그래서요?
콴 : 꼭, “이거 왜 안 되지?”, “이거 해달라고 했는데 왜 없지?”, “너가 이거 해달라고 안 했잖아”, “당연히 있어야지”, “당연히,가 어딨어!” 이런 싸움나고, 다시 3개월을 들여 더 개발하죠. 이런 모습을 어딜 가든 프로젝트마다 매번 봐요. 그래서 내가 PRD를 장착시켜주고 그들이 낭비하는 시간을 많이 줄여주면 투자금도 크게 아낄 수 있죠. 개발비는 곧 투자금일테니까.
푸딩 : 근데 너무 스타트업 까는 거 아녜요?
2장. 제품을 만들었고, 제품에 투자하고
판이 달라진 시장
푸딩 :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가, 그러니까, 오래되어 아까 들었는데도 가물가물한데, 그 당시에 싱가폴에 집중하셨잖아요. 동남아에 가겠다고 하고. 그때 왜 그런 방향으로 창업했던 거예요? 물론 그 당시가 모바일 붐이 불 때라 다양한 사업모델로 창업한 스타트업이 많긴 했지만, 콴이 그때 들려주던 사업 계획과 방향은 생소하고 신기했거든요.
콴 : 그때 제가 한날을 만난 시기가, 잠깐만요.
푸딩 : 게스트도 나오네?!
콴 : 너도 인사할거야? 형이랑? 인사해. 저기 봐야지.
푸딩 : 안녕~ 다음엔 게스트 나오면 미리 알려주세요. 근데 형이라고?
콴 : 제가 한날을 만나기 전에 넥슨에서 게임 내 광고 아이템을 기획하고 파는 일을 했어요. 카트라이더를 포함해 비슷한 특성을 가진 게임들을 대상으로 했죠.
푸딩 : 스마트폰에서 그런 사업을 상당히 일찍 하셨군요.
콴 : 그땐 PC 게임 대상이었어요.
푸딩 : 아, 맞다. 그렇네. 그 당시엔 카트라이더 모바일 게임이 나오기 전이었죠.
푸딩 : 카트라이더에 광고 아이템 나온다는 걸 전 기사로 봤을 거예요. 선정릉 근처에 있던 게임 인터넷 매거진 기사였죠. 카트라이더는 계속 캐릭터 뒤통수만 보니까 광고 아이템 붙이는 건 참신하다 생각했어요. 돈슨이라고 비아냥 대는 사람이 많았지만, 다른 기업으로부터 돈 가져와서 게임 서비스하면 고객에겐 좋다고 봤죠.
콴 : 고마워요. 제가 2008년 10월에 넥슨을 나오기로 결정하면서 게임 내 광고 사업을 시작하려 했어요. 근데 한 2~3년 정도 지나면서 모바일 붐이 부는데, 이런 새로운 매체에선 시장이 새로움에 자리잡는 비용이 크거든요. PC 게임에서 게임 내 광고 매출이 생각만큼 잘 나지 않은 채 일정 수준에 머물러서 월급 주기도 힘들었죠.
푸딩 : 그래서 모바일로 피봇(Pivot)한 거였군요. 2010년이나 2011년이면 살짝 늦는 거 아니에요? 이미 몇 몇 모바일 게임 광고 플랫폼이 자리잡아가던 시기였을텐데.
콴 : 맞아요. 저희가 피봇할 쯤엔 이미 카울리 등 잘 나가는 플랫폼이 있어서 국내에서 비벼볼 여지가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여러 방법을 모색하다가 운 좋게 동남아에 연결이 되면서 선점해야겠다는 판단을 했죠. 동남아 지역이 이머징(emerging) 시장이니 선점하고 버티면 시장과 함께 성장하리라 본 거에요.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이머징 시장이고.
콴 : 뭐, 잘 안 됐죠. 요근래, 한 4~5년 전에 동남아 시장에 진출한 다른 기업도 다를 바 없어요. 아직도 이머징 시장이고, 만만치 않은 시기를 보내고 있을 거예요.
푸딩 : 베트남 인구가 1억이 되고 젊은 인구가 많고 교육열 높아서 이렇고 저렇고. 아까 하신 말씀대로 똑같은 이야기가 10년째 반복되고 있어요. 내 퇴직연금...흐흑.
콴 : 게임 내 광고만으로는 도저히 수익이 안 될 것 같아 고민하다가 결제를 생각해냈어요.
푸딩 : 그건 좀 빨랐네요! 저도 2010년에 모바일 결제에 관심갖고 파던 시기였어요. 유료 다운로드 모델은 곧 지고 부분유료화 게임 시장이 커지면서 모바일 결제 시장이 커질거라 봤거든요.
콴 : 역시 같은 사고 흐름. 그 당시 한국 모바일 게임은 국내 퍼블리셔(유통, 운영사)를 통해 출시하고, 국외엔 퍼블리셔 권리를 통으로 파는 것이 흔했는데요. 동남아쪽은 카드 결제 시장이 거의 자리잡지 못했어요. 동남아 시장에 있는 선불 사업자를 끼고 동남아 시장의 모바일 결제를 뚫을테니 동남아 지역 권리를 저희가 맡겠다고 제안한 거였죠.
푸딩 : 그 당시에 저희는 넥슨, 그리고 텐센트와 전략적 제휴가 걸려있어 콴과 뭘 하기 어려웠지만, 그 당시에도 말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는 어땠어요? 그 당시에 다들 미국, 한국, 일본을 주요 시장으로 보던 때였잖아요.
콴 : 게임 두 개인가 테스트하고, 출시해서 매출도 좀 났지만, 결론적으로는 접었어요. 그런 플랫폼 사업을 하려면 플랫폼이 성장할 때까지 버틸 체력이 있어야 했는데, 저흰 그렇지 않았던 거죠. 회사가 오늘 내일하는데 어떻게 버티겠어요.
푸딩 : 제가 결제, 쿠폰 플랫폼에서 게임 컨텐츠로 선회한 이유가 그 이유 때문이에요. 플랫폼하겠다고 하다가 죽겠으니 일단 컨텐츠를 만들어 팔아야겠다! 그나저나 그 당시에 여러 게임 회사를 만났잖아요. 그 당시가 됐든 지금에 와서 회상해서든 “와, 이 회사 제품화 되게 잘한다”라는 인상을 받은 데가 있어요?
콴 : 그 당시는 10년도 넘게 지난 옛날이고, 그 당시 기준과 지금 기준은 너무 달라서 딱 꼽긴 어려워요. 2009년, 2010년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카메라 앱으로 1억 다운로드 넘기고, 지금 관점에서 보면 누가 투자할까 싶은 회사가 투자받고 그랬단 말이에요. 요즘 신입사원은 20년 전 신입사원이었던 나를 비교할 수 없을만큼 뛰어난 것처럼, 나날이 수준이 급격히 오르며 성장하고 발달하는 요즘과는 차이가 있어요. 그리고 그 당시에 만들어지던 게임은 그때의 흐름에 잘 맞춰 제작한 것이니 요즘과 비교하기 어렵죠.
푸딩 : 웬지 몸을 사리는 것 같지만, 맞는 말이죠. 요즘 신입은 제가 4~5년차 때 수준이에요. 아~ 요즘 친구들 왜 이리 똑똑하고 잘하지?
콴 : 요즘엔 단순히 소프트웨어 앱을 만든다는 개념을 넘어 서비스 운영, 더 나아가 인프라까지 함께 고민하고 만들어요.
푸딩 : 그렇죠. 겉보기엔 예전 앱이나 서비스와 다를 바 없는데, 개발 복잡도가 많이 올라서 다를 바 가득하기도 해요. 그러니 옛날에 앱이나 서비스 만들던 때에 생각이 머무르면 “옛날엔 며칠이면 만들었는데 요즘엔 왜 이리 훨씬 오래 걸리냐”는 말을 하게 되죠.
콴 : 그렇게 복잡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걸 보면 대표나 창업자의 깊이가 느껴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요. 근데 그런 대단한 분들도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면 제품에 대해 똑같은 고민을 갖고 계시더라고요. 분명히 내가 잘하는 걸 다 했어. 내가 잘 못하는 건 CTO(개발총괄)를 뽑아다가 맡겼어. 근데 왜 안 되지?
CS가 탁월하면 프로덕트가 무능해진다
푸딩 : 어떤 맥락이 담긴 얘긴가요? 제가 CTO가 아니어서 그렇다는 말인가요?
콴 : 제가 최근에 쓴 뉴스레터 중에 모바일로 사용하는 무인 세탁소 서비스인 런드리고 사례를 다뤘어요.
푸딩 : 런드리고에 다니진 않았잖아요. 이건 편집.
콴 : 안전한 얘기니 안심해요. 아, 거참, 되게 귀찮네.
콴 : 야놀자도 그렇지만 대 고객 서비스(Customer Support/Service/Satisfaction)를 하는, 특히 인프라를 깔고 서비스를 하는 조직은 CS가 굉장히 굉장하게 대단합니다. CS팀들이 대단히 헌신적이고 많은 걸 처리해요. 문제는 CS가 너무 잘하기 때문에 제품이 성장하지 않아요. 개선할 필요가 없어.
푸딩 : 그런 경우도 있겠네요. 고객을 CS가 가장 앞에서 만나 문제를 해결해버리니 고객을 만나야 할 제품단, 특히 PM, PO가 고객을 만나질 못하겠어요.
콴 : 만나질 않아요.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을 겁니다. 처음에는 너무 바쁘니까 고객 이슈 몇 개를 CS에서 맡겼겠죠. 근데 개발팀은 언제나 바쁩니다. 비꼬는 게 아니라 가장 야근 많이 하는 조직이에요.
푸딩 : 간단히 말해서 병목 조직이죠.
콴 : 그렇죠. 그렇게 제품 조직의 우선순위에서 밀린 개선 사항이 쌓이고, CS 조직은 진화해서 너무 잘하게 됩니다. 그러니 후순위로 밀린 개선 사항은 처리되지 않고 쌓이기만 해요. 실제 고객의 사용자 경험과 관련된 것인데도 CS가 해치워 버리는 거예요. 고객 눈에는 C급 제품인데, 제품 개발 조직에서는 문제 없는 제품으로 잘 돌아가는 거죠. 분명 잘하고 잘나가는 서비스인데 그런 문제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고 지내다 갑작스런 시장 변화에, 또는 경쟁자에게, 아니면 조직 변화에 CS 조직도 흔들리면 순식간에 고꾸라지는 거예요.
푸딩 : 아, 그래서 뉴스레터에 쓰신 글 제목이 CS가 탁월하면 프로덕트가 무능해진다군요. 조직에 체계가 갖춰지고 안정화 되는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 즉 성장통인 셈이네요. 조직도, 제품도 작을 땐 창업자든 대표든, 누군지든 간에 한두 개인의 개인기로 조직을 똘똘 뭉쳐내 앞으로 치고 나가는데, 조직이 커지면 잘 안 되죠.
콴 : 이미 커진 조직에 뒤늦게 온 사람은 맥락을 모르니 독재라고 하겠죠. 책에서 본 걸 적용해보고 절차도 넣어보며 자리잡을 때까지 지지부진한 성장 과정을 거치는 단계가 필요한데, 결과가 안 나오면 기다리지 못하고 조직이 해체되고, 아니면 다른 방법론으로 변경해 적용하며 다시 시작하고.
푸딩 : 링크? 뜬금없이 무슨 말이에요?
콴 : 제 글을 인터뷰 컨텐츠에 연이어 링크 걸어주실 거잖아요. 미리 감사드리는 거죠. 아무튼, 제가 야놀자에 있을 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대표님을 비롯해 대단한 분이 많이 계시잖아요. 수퍼히어로들이란 말이죠. 그분들은 또래에서 자신의 분야에 대해 가장 잘하는 사람들일 겁니다. 그런 분들이 관리자가 되어 조직을 이끌게 되면, 그 조직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자신이 과거에 해결했던 방법론처럼 조성되어야 하고,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잘하는 개인이 해결해내는 그림을 그릴 겁니다.
콴 : 근데 제가 보기엔 그게 큰 한계예요. 그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안 바뀔 가능성이 커요. 그걸로 성공해왔고, 이젠 힘도 세니까요. 그러니 옛날엔 몇 개월이면 개발하던 걸 이제는 안 된다고 하고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하며 충돌하게 돼요.
푸딩 : 해결 방법은 없을까요? 다시 태어나야 하나? 다시 태어나게 도와드릴 수도 없고.
콴 : 뭔가 무서운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제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프로젝트 전체를 총괄하는 리더를 선임하고 그 리더가 조직을 이끌며 문제를 해결해야 해요.
푸딩 : 그것도 리더의 개인기에 기대는 것 아닌가요? 역시 다시 태어나게 도와드려야 하는 건가.
푸딩 : 아, 이해했어요. 기능 단위 조직으로 파편화되어 이런 저런 변화를 독자적으로 시도하고, 실패하고 성공하는 게 아니라, 제품이라는 목적으로 조직되어 제품을 기준으로 다같이 시도하고, 시행착오를 공유하며 변화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콴 : 그렇죠. 갑자기 정리를 하는 걸 보니 이 주제는 갈무리하고 싶으신가봐요?
푸딩 : 아유, 무슨 말씀을. 근데 조직이 커지면 그만큼 움직이는 데 들어가는 힘이 크지 않겠습니까? 제품 제작도 마찬가지고요.
콴 : 조직이 커지면 작은 조직만큼 빠를 수 없는 건 맞지만, 조직이 크다고 제품을 똑바로 만들지 못하는 걸 합리화할 순 없어요.
푸딩 : 삼성페이 조직은 어느 정도였나요?
콴 : 삼성전자 안에서는 작은 조직이지만, 인원이 수 백에서 천 여명에 달하는 조직이죠. 그 정도 규모인 조직이 일정 밀리지 않고 결과물을 산출, 더욱이 대기업, 삼성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조직에서 그렇게 산출하는데 그보다 작고 기민해야 할 스타트업이 하지 못한다면 그건 그 스타트업의 한계라고 생각해요. 그게 그 스타트업의 한계여서 개발이 늦어지고 일정이 밀리는 거예요. 원래 개발 일정은 지연된다는 말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푸딩 : 그 정도 조직이 그렇게 일정 안 밀리고 움직인다니, 개발자로서 정신이 퍼뜩 드네요.
제품 형상화를 보는 투자자
출처 : AGBI
푸딩 : 좋아요. 삼성페이 만들다가 나온 건 아까 말씀하셨는데, 투자자가 된 이유는 뭔가요? 엔젤투자자를 하신 것도 아니고.
콴 : 회사 창업을 했다가 투자를 받아보지 못한 저같은 창업자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을 것 같아요. 벤처캐피털(Venture Capital)에서 심사역으로 있는 사람들, 엄밀히 말하면 주니어잖아요.
푸딩 : 그러고보니 그렇네? 그럼 VC는 주니어를 데리고 투자 실무를 뛰게 하는 거잖아. 역시 VC들은 대단해! ♥️♥️
콴 : 근데 그들이 VC에서 심사역을 하기 때문에 창업자 입장에선 되게 대단한 사람처럼 비춰지는 거고요.
푸딩 : 지극히 현실적인 표현이네요. 그래도 VC들은 대단해! ♥️♥️
콴 : 좀!
콴 : 제 입장에선 뭔가 잘 알지 못하는 주니어, 게다가 나이는 저랑 비슷하거나 어리죠. 그들이 내게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못나서인데 쟤네가 잘 몰라서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제가 투자자가 되면 나처럼 잠재성 있는 스타트업을 안 놓치고 잘 발굴할 거라고 생각한 점도 솔직히 있었고요.
콴 : 또 다른 이유는 삼성에 있을 때, 스타트업 시대가 다시 올텐데, 이번엔 직접 창업하기 보다는 투자로 스타트업 세계에서 활동하고 싶었던 마음이에요. 근데 운좋게 엑셀러레이터쪽에서 제안을 해서 발을 들인 거죠.
푸딩 : 들어와보니 그들이 꼬맹이들이었다는 걸 확인하셨나요?
콴 : 그들이 주니어여서 몰랐던 부분도 물론 있었겠지만, 여러 회사를 만나 업계 상황에 훤해진 빠꼼이가 된 거라 생각하게 됐어요. 투자자는 창업자만큼 깊지는 않아도 업 자체에 대해서는 최소한 빠꼼이가 되어가는 거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저는 좀 다른 투자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콴 : 우리나라에선 투자자 대부분 금융인입니다. 투자업 자체가 금융업이고. 투자업을 하는 분들 대부분 좋은 대학 졸업하고 CPA(공인회계사) 출신이거나 변리사 출신도 있고 그러는데 반해, 현업에 있다가 투자업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죠. 투자업종으로 가더라도 한 5~6년 정도 현업에서 경험한 후에 투자자로 시작하는 경우가 더 많죠. 그렇다보니 산업이나 업종, 업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거나 투자 펀드 운영은 잘하지만, 제품이 고객에게 전달되고 상호작용하는 것을 잘 모를 가능성이 크다고 봐요.
푸딩 : 하긴, 현업에서 오래 경력을 쌓은 사람이 전혀 다른 업종으로 전직하는 결정을 쉽게 하기 어렵죠. 처우도 걸리고. 그나저나 빠꼼이라는 단어는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콴 : 저는 현업 경험이 있으니 이 전문성을 살려서 투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PMF(Product Market Fit)로 이름짓고 투자를 시작한 겁니다.
푸딩 : 투자를 시작해보니 그들이 빠꼼이라는 걸 확인하셨나요?
콴 : 막상 해봤더니 업이 그렇게 돌아간다고 말하는 이유가 있더라고요. 저도 굉장히 다르긴 어렵다라는 걸 인정합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다르게 투자하려 애쓰고 있어요. 이쪽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더라도.
푸딩 : 스타트업에도 있어 봤고, 대기업에도 있어봤는데, 그런 사람이 투자자가 되고나서 투자 대상을 어떠한 눈으로 무엇을 보시나요? 간간히 발행되는 PMF 뉴스레터를 읽어보면 제 생각보다 다양한 분야에 투자 하시더라고요.
콴 : 저희가 초점을 맞추는 특정 분야가 있기도 하고, 분야와 무관하게 소개나 추천을 받아서 투자하기도 해요. 그래서 포트폴리오가 다양해진 면이 있는데, 초점을 맞추는 부분만 놓고보면 투자할 회사의 제품이 기대되는지를 보죠. 제품이 잘 산출될 것으로 기대되는가.
콴 : 후기 단계에 투자하는 투자자는 회사가 이미 고객과 거래, 매출이 다 잘 나오는 상태일 때 투자를 검토하고 분석하는 체계가 존재하는데, 저희는매우 초기 상태인 회사에 투자하며 참여해요. 프로세스가 간단하고 명료하죠.
푸딩 : 어느 정도로 초기인가요?
콴 : 제품이 아직 안 나왔거나 나올락 말락하거나 이제 막 나온 상태.
푸딩 : 제품이 안 나왔는데 제품에 대해 기대하긴 어렵지 않아요?
콴 : 정확히는 몇몇 고객은 사용하고 있으나 아직 안정되게 고착되지 않는 상태예요. 굉장히 유동적이고 변화무쌍한 상태로, 몇몇 종류의 컨셉만 검증해본 상태인 경우가 많아요. 그런 단계에 이른 제품을 보면서 우리가 보기에 좋은 제품 형상이 나올 거라는 기대감이 들고, 현재 제품에서 조금 조정하면 시장에서 충분히 도전할만한 잠재성이 있는, 그런 제품을 발견하면 투자를 합니다.
푸딩 : 법적 문제가 없다면, 실 사례를 들어주세요.
콴 : 음, 예를 들어 설명하면, 아마추어 축구회나 조기 축구회에서 경기 뛰는 분 중에는 등에 메는 GPS 추적기를 착용하는 분이 있어요. 이런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유비스랩이고 제품명은 사커비예요. 저희가 사커비를 보고 투자를 결정하는 시점에도 잘 팔리고 있었어요. 개 당 십 몇 만원 정도였는데도 말이예요.
출처 : 사커비
푸딩 : 생각보다 가격대가 있는데 잘 팔린다니, 고객에게 사랑받는 제품인가 보네요. 제품 홈페이지를 보니 텍스트가 흥미를 끄네요. 90분 경기에서 공을 가진 시간은 고작 2분이다. 나머지 88분 동안 보이는 움직임이 당신의 수준을 결정한다. 관심이 쏠리네요. 난 공 한 번 만져보지 못한 적도 있는데. 아니다. 못한 적도 있는 게 아니라 공 만져본 적도 있는데.
콴 : 그런데 저희는 이 제품으로 왜 판매 시장에서 뛰는 거지? 구독자 시장으로 옮기면 좋을텐데, 그런 고민을 했고,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눈 끝에 투자했어요. 저희 투자금이 작기 때문에 한 번에 큰 변화를 이룰 수는 없지만, 저희가 꾸준히 코칭을 한 끝에 최근에 구독 시장에 들어와 구독 숫자를 올리고 있어요. 매출이 많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푸딩 : 아까 말씀하신 기여하고 보람찬 경험을 하는 것이 바로 이 사례군요.
콴 : 갈 길이 멀지만, 분명 좋은 투자 성과를 낼 포트폴리오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푸딩 : 방금 말씀하신대로 투자 액수가 작잖아요. 유비스랩은 투자 받는 액수만큼 매출 내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도 않을 것 같은데, 스타트업들은 왜 PMF 파트너스에서 투자를 받는 건가요?
콴 : 창업자 입장을 아는 파트너로서 창업자 또는 대표의 고민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봐요. 대단한, 또는 규모가 큰 펀드를 운영하는 투자사가 많은데, 그들은 관리하는 펀드도 많고 투자하여 관리하는 회사도 많아요. 내가 그들에게 투자를 받았다고 나를 담당하는 담당자를 1년에 한 번 깊게 이야기 나누기도 쉽지 않아요. 내겐 한 번이지만 그 사람에겐 100군데거든요.
푸딩 : 기사나 책을 보면 투자자와 창업팀이 엄청 소통하여 판을 뒤엎는 건 특이사례이니 기사나 책에 다뤄지는 거죠. 대표의 고민은 오롯이 대표의 몫이에요. 그걸 남에게 의존하고 맡길 거라면 대표직도 맡겨야죠.
콴 : 한날스럽지 않게 대뜸 날을 세우네? 그들이 산업, 펀드, 업계 전문가일지는 몰라도 대표 입장에선 내가 개발하고 계발해가는 내 제품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파트너는 아닐지도 몰라요. 저희는 1년에 많아야 다섯 곳에 투자할 정도로 투자 건도 적고, 규모도 작으니 상대적으로 시간을 많이 낼 수 있어요.
푸딩 : 인터뷰 초반에 백수라고 표현하신 것에 이런 맥락도 있었군요.
콴 : 또한 고민하는 상대인 저희가 제품을 개발해본, 현업에 있었던 사람에 가깝기 때문에 밀도 높게 고민을 나눌 수 있지요. 사커비의 경우만 해도, KPI를 놓고 이미 구매한 고객의 숫자를 구독제로 전환시키는 게 훨씬 빠르겠다고 판단했어요.
푸딩 : 오! 새로운 구독 고객을 창출하는 게 아니라 이미 제품을 사용하는 고객을 겨냥하다니. 좋은 접근이네요. 고객 충성도가 높았나 보네요. 그래서요?
콴 : 돈을 조금 들여서 2년 전에 구매한 제품을 돌려보내고 최신 제품으로 바꾸도록 했어요. 기존 고객이니 구독제 가격을 할인해주고요. 그렇게 월 구독제로 전환하고 나면, 어떻게 해야 연 구독제로 전환할지 고민을 하죠. 그렇게 무엇이 제품 개발하는 데 가장 가볍고 단순하며 가장 빠르게 ROI(투자 대비 수익률, Return On Investment)를 높일 효과를 함께 고민하는 파트너가 되어줘요.
3장. 제품 문화
제품 문화와 제품 개발 과정
푸딩 : 이번 발표 제목에 제품 문화라는 말이 있어요. 많은 스타트업을 보면 제품 문화를 지향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제품에 대해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면 제품 문화라고 착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콴이 보시기에 왜 그렇다고 보시나요? 집중할 걸 못찾거나 신경이 분산되어 그런가?
콴 : 스타트업은 신경이든 역량이든 분산될 일이 있어선 안 됩니다. 실제로는 굉장히 많이 분산되어 있죠. 문화라는 단어가 온갖 표현에 붙는데 그 중에서도 조직에 가장 많이 붙는 것 같아요. 조직 문화 전문가도 굉장히 많고, 온갖 사례연구나 방법이 제시되죠. 성공한 스타트업은 이런 문화, 구글은 이런 문화, 이렇게요. 아니, 구글 문화가 대체 왜 궁금한건데?
콴 : 근데 조직이고 문화고 다 떠나서 문화라는 것 자체가 어려워요. 그 이유는 문화를 자꾸 선언하기 때문이죠. 최근에 어떤 회사의
푸딩 : 으앗, 또! 저 막 무섭고 막 그러거든요?!
콴 : 좀, 안심하세요. 어떤 회사의 되게 자랑스러워하는 인터뷰, 그러니까 홍보 기사를 읽었어요. 잘 나가는 스타트업의 조직 문화를 소개하고 자랑하는 기사였죠.
콴 : 그 기사를 읽으면서 내용이 개 Bull Shit!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푸딩 : 끄아아아~~ 미치겠네!
콴 : 잠깐! 난 개라는 표현을 쓴 적이 없는데?
푸딩 : 아, 그렇습니까. 어험험. 계속 하실까요?
콴 : 되게 멋있는 말이 써있어요. 우리는 이렇게 일해요, 이래서 좋아요. 그렇게 멋있고 자부심 가득한, 그런데 아무 말을 써놨어요. 저는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꽤 옛날인데, 제가 군대에 갔을 때 입구에 구타 없는 가족같은 부대라고 써있었거든요. 군대에 구타가 없었을까? 구타가 많기 때문에 그렇게 써놓은 겁니다.
푸딩 : 맞아요. 없는 걸 있다고 먼저 선방 날리듯 외치는 경우가 많죠.
콴 : 어느 회사에 갔는데 조직 문화에 멋지게 뭐라고 써놨으면 그 회사는 그게 안 되는구나, 결핍되어 있구나, 라고 생각하면 대부분 맞을 겁니다. 이렇게 문화를 선언하는 것이 문화적 문제를 갖고 있다는 방증이라 생각해요. 문화는 구성원 모두가 동일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동일하게 느끼는 무언가가 고착되면 문화가 되는 거예요. 문화가 말이 되든 안 되든 상관없어요. 구성원 모두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공유하면, 어쨌든 그게그 회사의 문화예요.
출처 : 뉴진스 라이브
푸딩 : 그러니 그 문화 밖에서 보면 이해되지 않는 경우가 있지요. 문화적으로 개성만점인 단체들이라든가. 제가 문화적으로 배타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생님.
콴 : 무섭다면서요? 무서운 거 맞아요?
콴 : 그래서 문화는 내 지향점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재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를 관찰하고, 정리하며 찾아내는 것이에요. 하지만 그러질 않고 누군가를 보고 따라가려 하죠. 왜냐하면 저게 멋있으니까. 무려 구글이 저렇게 한다는데!
푸딩 : 제품 문화에서 문화까지 왔어요. 그럼 제품 문화의 제품은 무엇인가요?
콴 : 제품 문화를 구체적으로 풀어서 얘기를 해보죠. 문화라는 말이 형이상항적이니까 형이하학적으로 접근해보면 제품 개발 프로세스가 드러날 수밖에 없어요. 문화는 반드시 프로세스로 나타나게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상태, 또는 상황에서 결정을 내리거나 일을 하는 것을 구성원 모두가 비슷하게 공유하며 문화가 형성된다고 했잖아요. 제가 제품 개발 프로세스를 만든다고 하는 것은, 제품 문화를 세우고 있다라고 하는 겁니다. 대표가 화이트보드에 뭔가를 그린 시점으로 가봅시다. 막내 디자이너가 화면을 따는 것으로 실무가 시작되었죠. 그렇게 우리가 어떻게 일할 것인가가 바로 제품 개발 프로세스이고 제품 문화입니다.
콴 : 제품 개발 프로세스가 동작하면, 우리가 이런 식으로 정기회의를 할 것이고, 업무를 공유할 것이며, 그 다음에 PRD를 쓸 거고. 대표가 화이트보드에 뭔가 쓴 시점부터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상상할 수 있어요. 누가 뭘 어떻게 하라고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레 일하는 방식에 맞춰 일하는 겁니다.
푸딩 : 여기에 더 낫고 못하고, 좋고 나쁨이라는 가치 판단은 하지 않고, 제품 문화 그 자체만 보는 거죠? 그럼 코칭할 게 있나요?
콴 : 회사가 제품을 생산하는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열악하거나 열위에 있을 수 있습니다. 제품 개발이 효율적인지 여부를 따져봐야 되겠지만 문화는 문화예요.
푸딩 : 아, 그 말인 즉, 가치 판단을 떠나서, 제품을 개발해 고객에게 전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제품 문화라는 말씀이군요.
콴 : 스타트업은 제품을 내는 조직이라고 저는 정의하기 때문에 제품을 만드는 제품 문화가 가장 중요합니다. 가령, 자유롭게 소통하는 걸 따지는 게 아니라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 소통이 자유로운지,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율적인 일정 관리가 되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거죠. 제품이 잘 만들어지면 나머지 문제들은 필요한 과정으로 수렴할 것이라 믿어요.
콴 : 제가 제품 문화로 목표하는 것은, 문화라는 형이상학적인 개념을 제품 개발 과정, 즉, 형이하학적으로 구체화한 프로세스를 조직에 탑재하는 것입니다. 삼성전자에서 애자일을 적용하는 걸 조금 포장하면, 조직 체계로 개인의 숙련도와 이해도를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는 거예요.
푸딩 : 그런 제품 문화와 관련된 워크샵과 코칭도 그런 맥락으로 하시는 건가요? 형이상학적인 것을 형이하학적으로 정의한다해도 어쨌든 문화는 문화잖아요. 이 좋은 문화를 우리가 따릅시다! 라고 선언한다고 되는 게 아닐 것 같거든요. 다같이 움직여줘야 된다는 건데, 그런 맥락에서 이게 가능한 건지 궁금해요.
콴 : 유사한 맥락입니다. 애자일 코칭을 받아보면 애자일은 철학이자 지향점이기 때문에 대표이사부터 말단 직원까지 모두가 동일한 컨센서스를 가져야 된다고 합니다. 너무 아름답지 않아요? 근데 그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수 없어요. 맥락이 다르고 또 다르기 때문에.
푸딩 : K-애자일이라서?
콴 : 발음이 미묘한 건 제 기분 탓이겠죠. 제가 “이런 제품 문화를 가져야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워요?”라고 말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제가 오늘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삼성전자처럼 닥치고 일단 해야 되는 상황이 된다면 무엇부터 해야 될까요?”라고 말을 할 때 움직이며, 이것이 제가 워크샵을 여는 이유입니다.
콴 : 우선은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이걸 하고 싶어하지 않아, 나만 해야한다고 생각해”, 라는 전제로 “그럼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다른 사람이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어떻게 PRD를 쓰고 이 PRD가 어떤 형식과 내용을 가져야 저 사람들에게 전달이 될 것인가?” 를 고민해야 합니다.
콴 : 이 PRD를 바탕으로, 또는 PRD를 선행해서 제가 MRD(Market Requirements Document)를 쓰거든요. 어떤 형태로 MRD를 쓰고 쪼갤 것인지를 워크샵에서 PM을 대상으로 다뤄요. 조직이 원해서 움직이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조직에 영향을 미치고 천천히 움직이기 위한 활동들을 워크샵에서 하고, 강의를 해요.
그가 PRD 워크샵을 하는 이유
푸딩 : 기업은 어떤 고민을 하기에 이 워크샵을 의뢰하는 건가요?
콴 : 사례를 들려드리죠.
푸딩 : 발표에서 다룰 내용일 것 같다는 불안감이 팟 스치는데.
콴 : 아직 발표 자료는 전혀 손도 안 대서 겹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
푸딩 : 안심하라고요?
콴 : 한 기업의 PM은 어떤 제품을 만들려 했고 B2C 제품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영업팀이 와서 B2B 제품으로 팔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대표를 가운데 놓고 회의가 열렸는데,
푸딩 : 영업팀이 이기죠.
콴 : 100%. 왜냐하면 최종적으로 영업팀이 돈을 벌어오니까. PM은 돈을 버는 직군이 아니고. PM은 아무리 생각해도 B2C 제품인데, B2B로 팔게 된 거예요. 그래서 B2B에 맞춰 다시 만들게 됐어요.
콴 : 이 사례에서 저희는 워크샵에서 PRD를 쓰고, MRD에서 대상 고객의 세그먼트를 정해 대상을 명확히 정의하라고 했죠. 3040 남녀라고 대꾸하길래 그거 말고 더 명확히 구분하라고 하니 어떤 이유로든 매일 운동할 것을 요구 받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더라고요.
출처 : PxHere
콴 : 예를 들면, 혈당으로 경고를 받는 환자가 있어요. 이런 사람은 약 먹고 항상 운동을 강요 받아요. 매일 운동을 해야 해요. 퇴행성 관절염으로 거동이 불편한 사람은 의사로부터 하체 근육을 단련하라는 처방을 받습니다. 그러면 이런 토론이 이뤄집니다.
“이런 사람은 매일 운동해야 하는데 운동을 못해”
“왜?”
“이러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런 고객을 대상으로 뭘, 어떻게 할까.”
“우리가 그 사람에게 어떻게 팔고 싶어?”
“그 사람들은 이러 이러한 사람이고 이 정도 재산이 있고 집은 이만한 크기야”
콴 : 이런 것을 정리하는 프레임워크를 심어주는 겁니다.
콴 : 워크샵 결과 B2B 제품으로 팔면 우리 제품이 고객에게 닿을 수 없는 단절된 상태에 갇힌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B2B 자체가 문제라는 게 아니라 이런 고객을 획득할 수 없다는 걸 프레임으로 정리해 공유합니다. 회사는 이 프레임을 바탕으로 결정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영업팀이 돈 벌어온다고 결정되는 게 아니라.
푸딩 : 재밌겠는데요.
콴 : 재밌어요. 돈이 안 되어서 그렇지.
푸딩 : 그래서 참 재밌긴 하죠.
콴 : 더 재밌는 건, 남한텐 돈이 안 되는데 나한테는 돈이 되는 일이 재밌는 거죠. 그런 일 많아요.
푸딩 : 나중에 부탁드려볼게요. 배고파요.
푸딩 : 이제 마지막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발표를 마치고 나서 청중들이 어떤 질문을 할 거라 예상하시나요? 또는 어떤 질문을 받으면 콴이 무척 기분 좋을까요?
콴 : 가장 많이 나올 질문은 아무래도 “전 PM이 되고 싶은데 뭘 준비해야 하나요?”같은 커리어 질문이 가장 많이 나올 것 같아요. 현업에서 PM이거나 주니어PM인 분도 마찬가지고요. 제가 받았으면 하는 질문은 “PRD에서 가장 중요한 거 뭔가요?”이거나 “제품 개발 과정에서 왜 PRD를 써야 하는 건가요?”, 또는 “PRD에서 중요한 건 뭔가요?”, “회사에서 겪고 있는 문제에 PRD를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같은 질문이에요. 왜냐하면 발표에선 아무래도 표면적이고 스케치 그리듯이 진행이 될 거거든요.
콴 : 근데 제가 PM커뮤니티를 운영하는데, 일주일에 한 번씩 클럽하우스에 모여서 이야기 나눠요.
푸딩 : 진짜요? 주변에서 클럽하우스 쓰는 분 오랜만에 보네요.
콴 : 한 3년째 하고 있는데, 그 커뮤니티에서 늘 나오는 질문 중 하나이긴 해요. 대부분 “회사에서 대표님이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어요”, “개발팀이 이렇게 해달라 하는데 이걸 왜 하는지 모르겠어요” 같은 질문들요. 그래서 그런 질문이 나오면 PRD가 필요한 상황을 고민하고 있다는 것이고, 좀 더 깊이 PRD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을 것이므로 제게는 성공적인 강연이라고 봅니다.
푸딩 : 좋아요. 중간 중간 광고도 하시면서 인터뷰 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콴 : 수고하셨습니다.
푸딩 : 아참. 인공지능 시대에 말할 땐 대명사, 지시대명사, 접속사를 자제해보아요. 인공지능이 녹취록 만들 때 괴로워하는 게 느껴져요... 그리고 저도 힘들어요...
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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