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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에서 야생의 Product Owner로.

낱글, 컨퍼런스
2024. 9. 7. PM 11:51:08
#서지연, #PO, #Product Owner, #개발자, #치즈, #인터뷰, #직무, #커리어

이 컨텐츠는 푸딩캠프가 주최하는 학습과 성장 컨퍼런스 2024에 연사자로 참여하는 서지연(치즈)님을 인터뷰한 내용을 다루는 컨텐츠입니다. 재밌게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연사자의 일면을 부각하여 각색한 것임을 알립니다.


1. Product Owner가 되고 보니 말인데요.

하나의 리더십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과 생각을 향한 리더십

푸딩캠프(이하 푸딩) : 안녕하세요, 치즈님.

서지연(이하 치즈) : 안녕하세요!

푸딩 : 인터뷰에 앞서, 그동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는데요. 우리 조합, 푸딩과 치즈예요. 어울리죠?

치즈 : 찰떡같이 붙어서 좋네요.

푸딩 : 왜 닉네임이 치즈인가요?

치즈 : 제가 다음(daum.net)에 다니던 중에 카카오와 합병을 했어요. 그래서 카카오 직원이 되었는데, 영어 이름을 전사적으로 사용하니 영어 이름을 지으라고 하더라고요.

푸딩 : 아, 브라이언!

치즈 : 그 분을 아세요?

푸딩 : 아뇨. 그 분도 저를 몰라요.

치즈 : 네... 그러시군요.

치즈 : 아무튼 어떤 영어 이름을 지어야 하나, 고민하는데 쿠키런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 당시에 열심히 하던 게임이거든요. 쿠키런에 여러 가지 맛을 내는 쿠키가 캐릭터로 등장하는데, 그 중에서 돈을 가장 잘 버는 캐릭터가 치즈케이크 맛 쿠키였어요.

푸딩 : 엑셀에서 공식 적용해 데이터 돌려서 효율 좋은 캐릭터로 게임하는 사람 본 적 있는데. 하긴, 돈 효율이 중요하죠.

치즈 :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말씀하신대로 돈을 많이 만들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아, 이걸로 하면 현실의 나도 돈을 많이 벌겠다”라는 생각에 치즈 케이크를 이름으로 선택했어요. 근데 파일을 파일명 점 확장자로 이름을 표기하듯이 점을 쓰라고 해서 치즈 점 케이크라 지었고, 그때부터 영어 이름으로 치즈를 사용하고 있어요. 굉장히 세속적인 이름이랍니다.

푸딩 : 여성분들이 대체로 먹을거리를 닉네임으로 많이 쓰잖아요. 딸기, 무화과 등. 치즈님도 그런 유래인가 했는데, 훨씬 훨씬 훠얼씬 인간미 넘치는 이름이군요.

치즈 : 그럼요, 그럼요.

푸딩 : 발표를 종종 하시지만, 실은 많이 바쁘시잖아요. 제가 어떤 연락 드리면 막 며칠 뒤에 응답하시거나 월 단위로 표시한 달력이 넘어가있고.

치즈 : ...

푸딩 : 그 와중에 이 작고 아담한 컨퍼런스에 기꺼이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근데 대체 왜?

치즈 : 우선 부채감이고요.

푸딩 : 그렇죠. 푸딩과 치즈 조합으로 뭔가 준비하려 했었죠.

치즈 : 근데 그 뒤로 너무 바빠져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푸딩 : 하지만 정신이 하나도 없으신 와중에 다른 데서 발표를 하셔서.

푸딩 : 멋져보였습니다.

치즈 : 그건 기술 주제여서 그나마 시간 대비 빠르게 발표 준비를 할 수 있는 거였어요. 근데 한날님은 그것 말고도 기대하는 게 있잖아요.

푸딩 : 언제나 그렇긴 하죠.

치즈 : 제가 기술을 주로 하는 사람이다 보니 기술 주제가 아무래도 편해요. 그런데 기술 주제가 아니라 제 경험을 나누는 자리를 갖고 싶다는 소망이 요새 생겼어요. 제가 지난 1년 동안 바쁘게 보낸 이유 중 하나가 PO(이하, Product Owner) 직무를 맡아서인데요. 그동안엔 개발자를 하든 개발 리더를 하든 개발 직군에 속했거든요. 이제는 제품에 대한 여러 직군이 모인 팀에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해요.

푸딩 : 상당히 변화가 큰데, 힘들지 않으세요?

치즈 : 이 매니징을 하면서 오히려 즐거운 점이 있기도 하지만, 어려운 점들도 있었어요. 되게 복합적인 생각이 들었는데, 하나로 정리하면 다양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거였어요.

푸딩 : 다양한 리더십이 뭐에요?

치즈 : 하나의 리더십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과 생각을 향한 리더십이요.

푸딩 : 아아. 개발 직군도 그 안에 다양함이 있지만, 이제는 제품을 중심으로 다양한 직군이 모이니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생각이 더 다양하겠어요.

치즈 : 네. 이제 다양한 관심과 생각을 대하고 마주하며 매니징하고 리더십을 고민하니, 그런 경험을 정리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블로그에 남기든 해야지 했지만, 계속 미루며 하지 못했고, 그러던 차에 연락을 주셔서 아, 잘됐다. 마감 주도 목표가 있어야 하는 거지, 일단 저지르고 나면 빠르게 어떡해서든 해내지 않을까 해서 참여했어요.

푸딩 : 그렇죠. 저는 주로 밤의 한날이 저를 주도할 마감 정한 일을 저지르면 낮의 한날이 수습하며 마감 주도 일 진행을 해요.

푸딩 : 이번 학습과 성장 컨퍼런스에서 연사자를 모시면서 가장 기대하는 건 자신의 얘기를 하는 거예요. 학습과 성장이 개인 영역에 있기도 하니 학습이나 성장에 이어져있는 개인 이야기를 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해주신다니 무척 기대됩니다.

커리어 전환, P.O(Product Owner)가 되다

푸딩 : 그동안 기술 스택도 그렇고 사업 분야도 그렇고, 굉장히 큼직하게 전환을 해오셨어요. 이번에도 PO로 크게 직무 전환하셨어요.

치즈 : 맞아요. 이번 회사의 사업 도메인도 처음 겪어보는 도메인인데, 팀도 데이터 팀이라 새로워요.

푸딩 : 데이터 팀은 무슨 일을 해요?

치즈 : 데이터 제품을 만들어요. 데이터를 수집하고 데이터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데이터 분석도 해서 팀을 구성하는 직무가 다양하죠. 제가 제품을 만들고 운영하는 데 동원하는 기술적이거나 도메인 지식 등 모두를 다 이해하는 게 아니다보니 협업 능력이 많이 필요해요. 이전에 겪어왔던 변화보다 이번 변화를 더 크게 느끼고 있어요. 기존에는 리더라 하더라도 같이 일하는 동료가 다 개발자이다보니 개발에 초점을 맞췄는데, 이제는 더 다양하고 많은 이해관계자와 이야기를 나눠야 하죠. 특히 이전보다 제가 조금 더 사업쪽에 맞닿아있다보니 사업적 성과를 어떻게 낼 것인지 고민을 하는 게 재밌기도 해요.

푸딩 : 아무래도 사업부가 개발부보다는 조금 더 사용자에 가까운 위치에 있어서 새롭겠어요.

치즈 : 예전엔 “내가 만드는 게 예쁘면 사용하겠지, 이렇게 잘 만든 건데” 했었다면, 이제는 “제품 가치를 잘 전해서 고객을 창출해야지”라고 고객을 생각하게 되어서 예전보다 더 그림을 크게 봐요. 재밌어요.

푸딩 : 제가 커피챗을 하며 만나는 주니어와 이야기를 나눠보면, 치즈님처럼 커리어 전환을 하면 자칫 커리어가 꼬일 수 있지 않을까 걱정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즈님은 주니어 때 그런 생각 안 들었어요? 사실 시니어에게도 커리어 전환은 부담스러운데 말이죠.

치즈 : 데이터 팀에 개발자도 계시고 비개발자도 계신데, 그 중간에 서서 무엇을 지금 해야하는지 고민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아 다음 분기에서 사업 전략 로드맵에 뭔가 당연하게 만들어내야 하는 게 있어요. 그럼 기술단에서는 뭘 해줘야 그때에 사업 전략을 수행할 제품을 만들 수 있겠다는 사고와 판단을 해야 해요. 정말 다행스럽게도 굉장히 내공이 깊은 개발자들이 그런 점에 대해 항상 제게 공유를 해주며 왜 필요한지, 이걸 하면 어떤 점이 좋은지 알려주셔서 자연스레 알게 되고 알아야 하는 상황이 좀 많아요.

치즈 : 제가 기술에서 너무 멀어지지 않고 그런 깊은 지식과 정보를 습득한다는 점에서 참 다행이에요. 물론 직접 코딩하지 못해서 아쉽지만, 그래도 ChatGPT라든가 여러 인공지능 도구를 이용해서 아쉬운대로 가볍게라도 계속 만들고 습득하며 목마름을 채우고 있어요.

푸딩 : 이쯤에서 치즈님이 집필하신 책 사진을 노출하겠습니다. 여러분, A.I를 활용해 프로그래밍 도움을 받는 것을 넘어 학습까지 이뤄내도록 노하우를 소개하는 책입니다. 자, 계속 이어갈까요?

치즈 : 고맙습니다.

치즈 : 당장은 제가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이렇게 알아보고, 이거 진짜 필요하겠다 생각이 들면 “이 과제 수행에 쓰시죠”, 이런 식으로 우선순위를 배치하기도 해요. 그러면서도 핵심적으로 제품에 중요한 것들은 개발자분들께서 만들죠.

치즈 : 제가 개발자 출신 PO라서 좋은 점이 있어요. 제가 만나는 고객으로부터 “이게 가능한가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기술적으로 되는지 안되는지 모색해보고, 된다고 판단하면 제가 먼저 POC(Proof of Concept, 개념 증명) 제품을 만들어 본다든가, 어느 정도 되는지를 먼저 가늠해본다든가 하고, 고객이 원하는 게 가벼운 수준이라면 직접 스크립트 작성해 돌려서 결과를 주기도 하죠. 그래서 PO를 하고 있지만 개발을 놓지 않고 있고, 놓지 않을 거예요.

푸딩 : 말씀을 되게 쉽게 하셔서 쉬운 일이라고 착각할 뻔 했네요. 역시 인공지능 책 저자.

치즈 : 아닌 게 아니라 최근엔 인공지능을 진짜 많이 활용해요. 이제 점점 다양한 것을 빠르게 간봐야(tapping) 하다보니 시간이 참 모자라요. 사업 과제가 쏟아져 들어오는데, 제 주된 업무 중 하나가 해야될 것, 못하는 것, 제가 쳐낼 것, 그리고 더 일을 크게 만들어서 다른 팀과 협업해야 하는 것을 분류하는 거예요. 그런 분류를 하다보면 개발해서 사업 과제를 간보는 프로젝트를 개발할 시간이 너무 부족해요. 그래서 인공지능이나 노코드 툴(no code tools) 같은 도구를 다양하게 탐색해보고, 사용하며 의존하게 돼요.

푸딩 : 예전엔 노코드 툴처럼 외부 서비스에 의존하는 걸 저는 불안 요소로 여겼어요. 제 통제력이 작게 미치잖아요. 게다가 그런 도구를 만들고 운영하는 회사는 대개 스타트업이고요. 근데 푸딩캠프를 저 혼자 만들고 운영하는데, 커피챗 사이 시간에 잠깐, 토이스토리 업무하기 전에 잠깐, 스터디캠프 업무하기 전에 잠깐. 이런 개발 생활을 하다보니 도저히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여러 외부 서비스와 인공지능을 조합해 활용하고 있어요. 푸딩캠프에 열 개가 넘는 서비스가 연동되어 있고, 자동화와 관련 된 서비스가 대여섯 개 되죠. 커피챗은 거의 90% 정도 자동화됐어요.

치즈 : 지금 푸딩캠프의 서비스들을 홍보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기분 탓이죠?

푸딩 : 저는 인터뷰어(interviewer)이므로 질문에 충실하겠습니다.

치즈 : 아직까지는 인터뷰어라기 보다는 평소처럼 수다 나누는 한날님인데...

치즈 : 예전에는 저도 그런 도구에 많이 의존하고 활용하는 게 맞나, 생각하며 저울질 했어요. 직접 개발해 사용하는 그것 나름대로 가치가 있지만, 제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더 가치있는 일이 무엇인지 판단해야 하죠. 조금 더 코딩 같은 기술이나 기술 내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가치를 높게 설정했다면, 지금은 예전처럼 높게 설정하진 못해요. 제가 하고 있는 역할과 수행력 그리고 결과를 내어 과제를 수행해야 하죠.

푸딩 : 수행하는 일의 종류와 유형이 바뀌었기 때문인가요?

치즈 : 네. 사업 측면의 가치를 많이 이뤄내야 하니, 이제 저는 기술이나 개발 최적화보다는 일단 동작하는 제품으로 사업 수행이 되는 걸 살펴봐요. 이게 정말로 의미있고 매출을 낼 수 있다고 판단되면 저는 손을 떼고 제품화(production)할 분들에게 넘기면서 제가 미뤄둔 제품 최적화를 부탁드리죠. 이런 식으로 제가 집중할 것에 적합한 도구를 찾고 활용하면서 실체화하는 실행력을 높여요.

푸딩 : 직접 만드는 역할에서 적절히 배분하고 협업하여 더 잘할 분에게 맡기는 역할로 변화하였군요.

치즈 : 맞아요. 제가 집중하는 게 바뀐 거죠.

2. 치즈는 오늘도 개발을 뚠뚠

좋은 사수와 함께 성장하다

푸딩 : 그런데 말이에요. 초반엔 완연한 PO가 되셨구나, 생각했는데, 개발 얘기 하실 때 표정보니 아직 개발자 향이 나는 것 같아요. 동족 냄새가 난달까요? 치즈님은 어쩌다 개발자의 길에 들어선 겁니까?

치즈 : 저 비전공자인 거 아세요? 경영학과를 나왔어요.

푸딩 : 방송대 경영학과, 많이들 가죠.

치즈 : 그게 아니라 첫 대학에서 전공이 경영학이에요. 그 당시엔 쭉 문과의 삶을 살 줄 알았어요.

푸딩 : 전혀 생각도 못했어요. 지금 다시 맡아보니 어쩐지 문과의 향이 나는 것 같아요.

치즈 : 문과이긴 해도 공대에 있는 경영학과를 나와서 정보경영을 들었어요. 그래서 공대생 친구들과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곤 했는데, 요즘으로 치면 PM(Product Manager)을 공부하거나 경영, 회계같은 완전 문과 문과한 것들을 했죠. 수업에서 IT 프로젝트 같은 걸 하면 일정 관리, 기획을 담당하고, 개발자 친구들이 개발했죠. 그렇게 개발에 대해서 이런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거구나, 라고만 안 채 졸업을 했는데요. 취업 준비를 하던 저는 중간에 좀 뜨는 시간에 개발 공부를 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재밌고, 계속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푸딩 : 그런데 졸업하고나서야 개발 공부한 상태라면 취업은 어려웠겠는데요?

치즈 : 그게... 그렇게 개발 공부하던 경험을 연계해 입사 지원을 했는데, 운이 좋게 바로 취업을 했고, 그 뒤로 쭉 개발자의 삶을 살고 있어요.

푸딩 : 어? 푸딩캠프 컨텐츠가 기만 컨텐츠가 되고 있잖아요?!

치즈 : 아니 아니, 그때가 정말 타이밍과 운이 좋았어요. 한창 모바일 붐이 일어나는데 저는 안드로이드를 처음 공부를 했거든요. 그래서 안드로이드 개발 직군으로 지원했는데, 회사에서는 저를 채용하고는 iOS를 시키겠다는 거예요. 뜬금없죠? 그래서 iOS 개발을 열심히 했죠.

푸딩 : 접속사 “그래서”가 되게 어색한 거 아시죠?

출처 : buildfire

치즈 : 근데 모바일 붐이 불었다고는 해도 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 그리 좋진 않았어요.

푸딩 : 최근 몇 년 사이가 이례적이지, 대부분의 시기 동안 개발자라는 직업이 유망하고 선호되던 적은 별로 없죠. 그래서 개발자 공급이 늘 부족했죠.

치즈 : 맞아요. 모바일 붐이 불던 그때도 그랬어서 싼 값에,

푸딩 : 어? 지금 그 표현 불편합니다.

치즈 : 인터뷰 전에 편안하게 하자면서요.

푸딩 : 직관적인 표현이 이해력을 돕습니다!

치즈 : 여튼, 그렇게 개발자를 계속 뽑던 상황이어서 운 좋게 들어간 거였죠.

푸딩 : 근데 지금은 카카오이고 그 당시엔 다음 커뮤니케이션이었던 다음이 첫 회사 아니에요?

치즈 : 두 번째 회사예요. 이때도 운이 좋았는데, 제주도에서 서버 개발할 신입을 뽑는다는 거예요. 개발 직업이 선호받지 못하는데 더군다나 제주도라니, 얼마나 채용이 어려웠겠어요. 안드로이드와 iOS를 개발해오던 제가 지원했는데, 저 정도 열정이면 서버도 하지 않겠냐라며 저를 뽑더라고요.

푸딩 : 회...회사들이

치즈 : 저는 항상 말해옵니다. 용감한 회사들이었다. 나를 뽑다니.

푸딩 : 다음 커뮤니케이션은 그렇다쳐도, 첫 번째 회사는 정말 과감한 것 같아요. 어떤 회사였어요?

치즈 : 중소기업이었는데, 모바일 분야에서 사업을 하는 건 아니었어요. 모바일 붐이 이니 R&D성으로 프로젝트 팀을 구성했고, 채용이 쉽지 않으니 데려와서 키우겠다고 판단한 거였죠. 모바일 붐이 지금의 저로 이끈 거예요.

푸딩 : 겸손하게 말씀하시긴 했지만 스스로 개척하셨다고 봐요.

치즈 : 저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데요. 왜냐하면 그것 말고도 대박 운이 좋은 일이 있어요. 첫 번째 회사는 전형적인 중소기업으로 개발문화가 좋다고 말하기는 좀 어려웠어요. 근데 제 사수님은 인식이 굉장히 다르셨어요. 누가봐도 찐 개발자.

출처 : 구글 이미지

푸딩 : 삐빅. 지금 진짜 개발자를 논하는 건가요? 이번에야 말로 위험 신호 감지.

치즈 : 그런 거! 아니고요! 사수님은 뼛 속까지 개발자셨는데, 계속 개발자로서 성장을 갈망해야 한다고 뿌리 깊게 생각을 품고 계셨던 분이죠.

출처 : Marc

푸딩 : 띵동, 녹색불. 여튼 진짜 운이 좋으셨네요. 좋은 사수라니.

치즈 : 네, 정말 운이 좋았어요. 사수님은 제게 이것 저것 해보라며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제게 사내 스터디를 추천하며 같이 해주시기도 했고요. 제가 영어를 좀 하니까 iOS쪽 국외 블로그에 있는 번역팀에 자원봉사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셔서 뜬금없이 자원봉사를 하기도 했죠. 그리고 밖에서도 활동을 해야 한다고 하셔서 iOS 커뮤니티에서 활동했고, 그런 활동이 연이 되어 GDG 활동도 했어요.

푸딩 : 굉장한 사수님이시네요. 그 당시 스타트업 업계에서 주로 힙한 곳들이 하던 활동이잖아요. 그런 걸 회사에서는 하기 어려워도 부사수가 밖에서 하도록 투자하여 성장하는 활동을 하게끔 일깨워주셨네요.

치즈 : 14년 전에 이미 그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뿌리 깊게 하시고, 저를 밀어주고 끌어주신 게 지금도 무척 신기해요.

푸딩 : 그 분이 저처럼 모임 만들어서 발표 해달라고 하면.

치즈 : 당연히 하죠.

푸딩 : 곱씹을수록 독특한 분이셨네요. 요즘엔 인식이 바뀌어서 주니어들에게 번역에 기여하는 활동하면서 업계 인맥을 넓혀가야 한다는 말을 하지만, 10년 전엔 주니어에게 하라는 말은 흔치 않았던 것 같아요. 권해도 감히 내가 어찌? 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근데 회사 분위기 상 그런 활동을 하는 게 녹록치 않았을 것 같은데요? 눈치 주는 사람 없었어요?

치즈 : 있었어요. 개발자는 야근해야 하는 거 아냐? 라는 생각을 하던 좀 더 윗분이 눈치줘서 사수님과 같이 야근했는데요. 사수님은 그래도 꼭 해야 한다고 주말에도 저를 데려가시곤 했어요.

푸딩 : 부사수를 엄청 살뜰하게 챙기셨네요. 사수가 없는 주니어들 입장에선 이렇게 내게 열정적인 사수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것 같아요.

치즈 : 네네.

야생의 개발자

푸딩 : 그 후에 이직한 곳이 바로 제주도에 본사가 있던, 지금의 카카오예요?

치즈 : 맞습니다.

푸딩 : 사수님 가르침을 열심히 따랐다면 당시 다음 커뮤니케이션 채용 담당자는 “저 정도 열정”이라고 생각할만 하네요. 근데 다음이라고 칭하자니 헷갈리고, 다음 커뮤니케이션은 기니까 편하게 카카오로 통일해요, 우리.

치즈 : 좋아요. 카카오는, 지인이 제주도 출신이어서 제주도 카카오에서 인턴을 하다가 입사를 했어요. 그 지인이 회사에서 주니어 개발자를 뽑는데 제가 생각이 났대요. 저는 첫 번째 회사에서 1년 정도 다니던 상황이었는데, 취업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입사 지원하고 연락을 받았는데, 뫄뫄뫄를 하겠냐는 거예요. 그런데 제주도잖아요! 그래서 냅다 “해보고 싶습니다”라고 했죠. 그래서 하게 되었습니다. 서버 개발로 직무 전환을.

푸딩 : 여태까지 들은 얘기를 정리하면 “까짓 것 하죠 뭐”라고 말했는데, 정말 하고 있다는 거군요.

치즈 : 네, 그래서 항상 할 때마다 어? 이게 되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회사님. 꽤나 용기 있으시네요! 😘 라고 말하죠.

푸딩 : 카카오 때는 어떤 서버 개발 일을 하셨어요? 서버 개발은 처음이었잖아요. 어떤 프로젝트부터 하셨어요?

치즈 : 뉴스팀에 처음 배정되었어요. 기본 업무는 대용량 트래픽을 처리하는 도메인이었고, 그 외에 자잘하게 신문사나 미디어사에서 오는 컨텐츠를 뒤에서 처리하는 등 여러 운영 작업을 했죠. 예를 들면, 시즌에 맞는 이벤트 페이지를 만든다거나 검색팀 같은 다른 부서와 함께 투표 기능이 섞인 페이지를 작업하고 운영하는 거죠. 그 당시엔 이런 작업을 손으로 직접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푸딩 : 신기하네요. 치즈 케이크 많이 먹으면 2년차에 그런 기술을 다룰 줄 알게 되나요? 어떻게 공부하셨어요?

치즈 : 그때는요. 지금처럼 사내 클라우드(private cloud)가 있던 것도 아닌, 굉장히 야생이었어요. 이걸 어떻게 했었지? 싶은 대단한 게 참 많았어요.

푸딩 : 예를 들면요?

치즈 : 배포를 예로 들면요. 그 당시엔 블루그린 배포라는 개념 자체가 그다지 인식되어 있지 않던 시기였는데요.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 막 이렇게 저렇게 해서 운영하던 배포 방식, 바로 그게 블루그린 배포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무슨 개념인데, 그걸 했네”, “마구잡이로 어떡해서든 구현을 해서 운영했는데 그게 돌아갔네?” 이런 것들이 되게 많더라고요. 로드밸런서만 해도 지금이야 워낙 잘 되어 있잖아요. 특히 시각화가 잘되어 있어서 트래픽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하기 좋지만, 그때 당시에는 실제 띄워놓은 서버로 접속해서 어마어마하게 긴, 읽기도 버거운 셸 스크립트를 아주 절묘하게 동작시켜 파악했죠.

푸딩 : 대개 그런 스크립트는 구전되듯이 전해지죠. 리팩토링하기도 어렵고.

치즈 : 제 말이요. 어떤 서버 캐쉬가 어디에 물려있고, 어떨 때 만료시키는 운영법이 구전으로 전해지고, 그걸 또 어깨 너머로 배워서 익히고. PHP로 돌고 있던 서버에서 아주 용감하게 실 서버 코드를 대상으로 라이브 코딩도 하고, 경고 메시지 뜨면, “우왕, 큰일났네, 혼나겠다” 이러면서 빨리 고쳐서 배포하고.

푸딩 : 잠깐. 그걸 주니어에게 맡겼고, 그 주니어인 치즈님이 했다고요?

치즈 : 이게 제주도팀이라는 점, 그리고 미디어가 개발자에겐 그리 재밌는 도메인이 아니어서 그런지 신입과 주니어가 정말 없었어요. 팀 내에 10년 넘은, 뼈대가 굵은 개발자가 많았죠. 그곳에서 저를 굉장히 빡빡하고 열심히 가르치셨다 생각해요. 당장 업무를 해야하다보니 이건 알아야 한다, 저것도 알아야 한다, 그곳도 알아야 하고, 모두 다 알아야 한다고 했는데, 당시 저처럼 일하고 배우는 주니어 개발자가 없어 비교할거리가 없었죠.

출처 : 모름

치즈 : 워낙 신입이 없는데 그 마저도 팀 여기 저기로 흩어졌어요. 자연어처리팀에 한 명, 지도팀에 한 명, 미디어팀에 저 한 명. 그렇다보니 비교 대상이 없었고, 원래 일은 이렇게 거칠고 힘든 야생에서 해야 한다고 주입 받았어요.

푸딩 : 그거 가스라이팅 아니에요? 비교할 대상이 있어야 기준이 세워지는데, 사실상 기준이 없이 이게 디폴트였겠네요.

치즈 : 아, 이게 디폴트인가보다, 이러면서 그냥 생존에 충실하며 일을 했어요. 한 번은 너무 학습 속도가 느리다는 피드백을 받았는데, “난 느린가봐”라면서 하던대로 그냥 냅다 할 일을 했죠.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회사 안인데도 너무 야생이었지만, 좋게 생각하면 여러 기술과 분야를 실전에서 겪었고 그 덕분에 빠르게 습득했던 것 같아요.

푸딩 : 그래도 거칠다는 점은 변치 않아요. 힘들진 않으셨어요? 너무 야생인데.

치즈 : 지금이야 이렇게 말하지만, 좋았다고 말하긴 어렵죠. 많이 울고 그랬거든요. 내가 바보구나, 싶은 순간도 되게 많았고요. 그래도 운이 좋은 것 중 하나는 거기서 제 남편을 만났어요. 남편이랑 같은 팀이어서 남편이 많이 도와줬어요.

푸딩 : 역시 성장에는 내가 잘하는 것에 더해 내가 잘할 수 있게 옆에서 조력해주는 사람도 무척 중요해요. 이번에도 조력자를 만났군요.

치즈 : 맞습니다. 남편이 되게 많이 알려줬어요. 제가 처음 입사하여 수습을 하면서 받은 미션이 토비의 스프링 책을 스터디하며 주마다 발표하는 거였어요. 그게 말이 안 되는 건데, 야생 환경에서 업무를 보면서 매주 한 장(chapter)씩 공부를 한 후 발표하는 거예요. 한 번은 제가 너무 이해가 안 되니 남편이 한 번 더 수업을 해주었어요. 그래서 책 내용을 좀 빠르게 습득했어요.

푸딩 : 잠깐, 그 표정은 뭐죠? 설마 그 두꺼운 토비의 스프링 두 권을 완독했다는 건가요?

출처 : Yes24

치즈 : 제 인생 자랑거리 중 하나죠. 저는 토비의 스프링 두 권을 목차부터 색인까지 완독한 사람입니다.

푸딩 : 보유하고, 일부 본 사람은 있지만 완독한 사람은 거의 없다는 그걸... 아니 완독도 완독이지만 그렇게 거칠게 일하면서!

치즈 : 비교 대상이 없어 당연히 이렇게 일하나보다 라고 생각하던 저도 그 당시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나봐요. 제가 근무하던 당시에 바로 근처에 회사 어린이집이 있었고, 회사 분들 대부분은 이 어린이집에 아가들을 보냈단 말이에요. 그래서 만약 나를 수습에서 떨어뜨리면 나는 반드시 저 어린이집에 선생님으로 입사할 것이라고, 두고 보시라고 말했어요.

푸딩 : ...

치즈 : 네. 그렇게 살아 남았답니다.

3. 각양각색, 진화하는 리더십

리더가 되다

푸딩 : 대단하세요. 근데 그때면 아직 주니어일 때죠? 어느 시기부터 중-주니어? 요즘 말로 중니어인 시기가 언제인가요? 네이버 다니셨을 때? 페이스북인가요?

치즈 : 페이스북 다니던 시기인 것 같아요. 조금 굵직한 과제 정도쯤은 리딩하는 정도였는데, 페이스북에 가서도 하드 트레이닝을 했어요. 주니어인데 페이스북 코리아에서 제가 있던 오피스에 엔지니어가 저 한 명이었거든요. 그래서 한국 시장에 있는 모든 프로젝트를 제가 리딩하고, 보고 올리고 그랬죠. 그렇다보니 매니저께서도 항상 제게 “너는 CTO라는 생각으로 해야 한다”라고 하셨어요.

푸딩 : 킁킁, 또 가스 냄새가.

치즈 : 중간자 역할로 제가 보고하고 발표하는 상황에 덩그러니 떨어져서 시장에 필요한 과제들도 제가 혼자 기반 작업하고, 같이 진행할 사람 수배하고, 아시아-태평양 팀에서 진행하거나 글로벌 팀에서 진행하는 엔지니어링 발표를 한국 오피스에다 제가 발표하고 그랬죠.

푸딩 : CTO처럼 일한 거 맞네요.

치즈 : 제가 중니어이긴 하지만, 산하에 저를 대신할 사람이 없어서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하고 관리하는, 카카오 때와는 다른 야생에서 일했어요. 그렇게 빠르게 성장하였고, 리더가 되든 도전적인 과제를 받든 개의치 않고 “아, 어쩔 수 없구나. 그냥 해야 되겠다”라는 굳은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게 성장하는 데 영향을 미친 근무 환경이었죠.

푸딩 : 그래도 저하고 경력이 10년 정도 차이 나는데, 왜 제 세대 같죠. 20년, 25년 전 얘기를 듣는 느낌이 들어서 자꾸 눈물이... 큽.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알아서 하라고 하고, 눈치껏 어깨 너머로 배우면서 생존하고.

치즈 : 네네.

푸딩 : 그렇다면 “난 시니어다”, “주니어가 들어오면 내가 챙겨주고 조력해야겠다”같은 인식을 언제부터 하셨어요?

치즈 : 페이스북에 다니면서 너무 고생을 해서 “누구든 오기만 해봐라. 그동안 내가 당한 만큼 정말 잘해주겠어” 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저도 제 전임자가 있기는 했지만, 사실상 선수 교체였어서 같이 일을 한 적이 없었죠. 전임자는 아예 미국으로 갔거든요. 혼자가 된 상황에서 여러 협업 부서에서 이런 것들도 해주시면 안 돼요? 이것도 해주셔야죠, 이런 식으로 요청하면 “그냥 해야 되나보다” 이러면서 그냥 했었어요.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면서 깨달았죠. “아, 이거 안 해도 되는데. 저건 다른 사람이 하면 되는 건데”.

치즈 : 그렇게 1년을 일하는 사이에 새로 합류해서 6~8개월 함께 일을 하시던 분이 계셨는데, 그분한테는 이건 안 하셔도 되는 거고요, 이거는 하시고요, 그렇게 도와드렸어요. 그 분은 경력자로 입사하셨지만, 이 직무는 처음 해보시는 상황이었고, 내가 겪은 압박과 부담을 굳이 이 분도 겪을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고 얼마 후에 네이버로 넘어갔는데요.

푸딩 : 응? 잠깐, 그것도 바통 터치인 것 아닙니까?

치즈 : 좀 달라요. 아무튼 달라요.

치즈 : 네이버엔 처음부터 팀 리더로 입사했어요. 주니어

푸딩 : 주니어 네이버요?

치즈 : 팀에 주니어가 있었다고요! 그리고 경력이 많은 분도 계시고.

치즈 : 주니어로 들어오는 분을 보면 제가 주니어일 때 겪었던 어렵고 힘든 과정이 생각났어요. 주니어로서 힘듬, 초년생으로서 힘듬, 아무도 나를 챙기지 않을 때에 느끼는 어려움. 이제 저는 사수로서 같이 있어주는 게 아니라, 팀 리더로서 같이 있어주는 데 한계가 있고 모든 걸 챙겨주지 못하잖아요. 직속 사수, 부사수가 아니라 주니어도 있고 경력자, 시니어도 있는, 여러 사람을 리딩하니까요. 그런 데에서 부재할 때 방향 제시를 잘 해드려서 스스로 해나가길 바랐어요. 이런 건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런 걸로 힘들었던 시간을 보냈으니, 팀원들이 그런 고생, 그러니까 안 해도 되는 고생은 하지 말라고 말하였죠.

푸딩 : “내가 하드스킬을 몇 년 했고, 소프트 스킬도 몇 년에 걸쳐 성장시켜 왔으니 이제 나는 리더가 될 때가 됐어, 그러니 다음에 이직할 땐 리더가 될 거야” 그렇게 리더가 됐다는 걸 인식한 게 아니네요. “내가 했던 그 삽질을 굳이 할 필요 없어”라는 말을 해주고, 그런 환경을 만들려는 의지를 가지면서 리더가 됐다는 걸 인식한 거죠. 따뜻한데요.

푸딩 : 근데 일단 냅다 부딪혀서 서버 장애도 일으키며 성장하듯이, 리더도 비슷하게 경험하며 성장하잖아요. 리더라는 인식은 커녕 리더십이 없는 상태에서 리더 역할을 하고, 팀에서는 저 인간하고는 같이 일 못하겠다 들고 있어나고. 그렇게 두들며 맞으면서 리더십을 알아가고 리더가 되죠.

리더의 역할과 책임감

치즈 : 그것 조차 야생으로. 하드스킬을 야생에서 생존 기술처럼 익혀온 온 것처럼.

푸딩 : 그러니까요. 팀장이 되는 방법, 리더가 되는 방법을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푸딩 : 치즈님은 리더가 되고나서 “나는 리더야”라거나 “이러한 책임을 느껴”라는 인식을 하면서 변화한 게 있었나요?

치즈 : 음. 예전에는 팀원 중 한 명이던 제게 “이 팀은 치즈가 맡아주면 좋겠어요”라고 해서 리더 역할을 맡았어요. 또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팀에 덩그러니 덩~ 하고 떨어져 팀이 시작되어 자연스레 리더 역할을 맡게 되었어요. 이번에는 이직하면서 원래 있던 팀의 리더가 됐어요.

치즈 : 그래서 부담을 좀 느꼈어요. 이미 조직된 팀에 형성된 라포(rapport,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상호신뢰관계), 명시적 규칙, 암묵적 규칙 등이 있을텐데 처음 보는 사람이 합류한다는 것, 더구나 리더로 합류한다는 건 자칫 갈등과 마찰을 빚을 수 있잖아요. 게다가 이 팀은 경력이 많은 시니어로 구성되어 있어서 경력이 더 짧은 신규입사자가 리더가 되는 걸 싫어할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했어요.

푸딩 : 게다가 치즈님은 엄청 동안이고 눈에 뜨이는 캐릭터잖아요. 제가 그 당시에 바로 옆에서 지켜본다면 조마조마 했을 것 같아요. 결론부터 말하면 문제 없었다는 건데, 이번엔 어떻게 해내신 거예요? 아참, “제가 뭔가 해낸 건 없어요, 운이 좋았죠”라는 겸손은 금지.

치즈 : 음. 그렇다면 서로의 기대치가 일치했다고 말할게요. 팀의 시니어들은 개발에 집중하고, 팀에 쏟아지는 개발 외적인 일은 알아서 정리가 되길 바랐어요. 현실은 당연히 알아서 정리가 될 리도 없고, 방향성 설정도 안 된 거죠.

푸딩 : 어떤 마음이고 상황인지 알겠어요. 저만 하더라도 그런 일이 몰리면 코딩으로 도망치곤 해요. 미래의 내가 정리하길 바라는 마음을 가진 채 말이죠.

치즈 : 개발에 관한 건 이미 무척 잘 진행되니까 저는 개발 외적인 업무를 정리하고, 팀 리더로서 다른 부서와 관계 및 일정을 조율하는 일을 정리하여 우선순위에 맞게 해치웠어요. 그러니 이미 원래 개발 잘하는 팀에 생산성과 효율성이 붙어 더 빠른 팀이 되었어요. 팀이 조직력을 발휘해 발을 맞춰 나아가는데,

푸딩 : 이인삼각처럼 가는 건데 알고보니 전력질주하는 수준으로 빨라진 거군요.

치즈 : 그렇죠. 일이 있어야 할 곳으로 보내고, 조율하고 전달하는 정리정돈 만으로도 팀이 잘 뛴다는 걸 깨달았어요.

푸딩 : 세상에, 이미 잘하는 팀에 조직력이 더해지고, 더 빨라지다니.

치즈 : 이 분들에겐 코칭 같은 것도 필요 없을만큼 잘하세요.

푸딩 : 그건 아닙니다. 푸딩캠프에 맡겨주시면 시니어분들이 고민하고 도움이 필요한 부분을 찾아 코칭해드리겠습니다. 푸딩캠프의 코칭 프로그램에 문의해주세요.

치즈 : 자꾸 푸딩캠프 광고할 거예요?

푸딩 : 불펌 대비용입니다. 후후. 계속 하시죠.

치즈 : 코칭은 오히려 제가 팀에게서 받고 있어요. 제가 리더의 역할을 할 때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도메인,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리더십이 달라지고. 상황에 맞추면서 한 사람이 발휘하는 리더십 형태도 달라야 한다는 걸 다양한 모습과 방식으로 깨닫고 있어요.

푸딩 : 빠르게 이해하고 변화하는 진화, 다시 말해 이상적 진화를 하고 계시군요.

치즈 : 저를 받아들이고 자리잡도록 조력해준 팀에 매우 감사하게 생각해요. 아무리 개발에 집중하고 싶었다 하더라도 외부에서 갑자기 들어온 사람이잖아요. 선을 넘을지 모른다는 우려에 거부하는 마음으로 맞아들이는 경우도 많죠. 그래서

푸딩 : 잠깐만요. 이야기를 더 듣고 싶은데, 더 진행했다가는 컨퍼런스 발표 내용까지 들어갈 것 같아서 더는 안 되겠어요.

치즈 : 지금 이야기도 발표에 인트로로 깔려고 한 내용이긴 해요.

발표를 해야 하는 이유

푸딩 : 치즈님의 리더와 리더십 이야기는 컨퍼런스 발표에서 듣기로 하고요.

푸딩 : 컨퍼런스 발표라는 말이 나와서 말인데요. 왜 여성 시니어 개발자분를 컨퍼런스같은 공개 석상에서 뵙기 어려운 걸까요? 그동안 저는 여성 시니어 개발자 수가 적어서 그런 건가 의문을 가졌는데, 주변을 좀 더 꼼꼼히 살펴보니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그렇다면 이분들이 외부 활동을 잘 안 한다는 생각이 맞을 가능성이 크죠. 여성 시니어 개발자가 바깥 활동을 잘 안 한다는 인식은 저 말고도 여러 사람이 갖고 있어 보여요. 이번 푸딩캠프가 주최하는 학습과 성장 컨퍼런스 2024에서는 연사자 성비를 3:3으로 맞추자 여러 사람이 호응해주었어요. 치즈님은 여러 행사에서 발표도 하시고, “나는 프로그래머다”에서 공동 MC로 활동도 하셨잖아요. 바깥 활동을 하시는 여성 시니어 개발자 입장에서 다른 분들이 잘 활동하지 않는 이유를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치즈 : 이건 전체적으로, 넓게 현상을 봐야 해요. 개발 생태계 전반에 분위기로 형성되어 있는 인식이 있어요. 개발자는 코드로 승부해야 한다, 코딩을 잘해야 개발자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라는 뿌리 깊은 인식이죠. 저도 그렇고요.

푸딩 : 저도요. 사람들이 저에 대해 오해하는데 저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거 되게 불편하고 힘들고 어려워해요. 먹고 살아야 할 때 마지못해서 하는 거죠.

치즈 : 먹고 살아야 할 때가 잦은 건가요?

푸딩 : 그게 왜 그러냐면. 아니, 왜 사회를 보시나요. 치즈님도 발표 준비하는 게 힘드신가요?

치즈 : 그럼요. 바깥 활동을 하려면 한정된 시간을 쪼개서 하는 건데, 이 말은 개발 업무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걸 뜻하죠. 저도 발표를 준비하는 등 바깥 활동을 하려면 개발 업무에 들이는 집중력이 80%, 70% 이렇게 줄어들게 돼요.

푸딩 : 발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감사합니다. 🙇‍♂️🙇‍♀️

치즈 : 그래서 성별과 상관없이 바깥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사람을 안 좋은 시선이 있어요. 체감 상으로는 그런 인식이 넓게 깔려 있는 것 같아요. 게다가 공개된 자리에 노출되어 있으니 여러 가지 공격을 받기도 해요.

푸딩 : 맞아요. 간단히 말해 “쟤는 저렇게 발표해서 언제 개발하냐?”에 시달리기도 하죠. 그런 점에서 여성들이 편견과 거부, 대상화 등으로(Misogyny) 공격받는 상황에서 그런 공격도 더해지면 더 힘들겠네요.

치즈 : 저 역시도 그런 시선으로 업무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것 아니냐는 피드백을 받아본 적 있어요. 신경 쓰이더라고요. 그런데 요즘엔 신경쓰지 않아요.

푸딩 : 이번엔 어떤 야생인 겁니까?

치즈 : 정신승리(精神勝利)

푸딩 : 무슨 뜻입니까?

치즈 : 경기나 경합에서 겨루어 패배하였으나 자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신은 지지 않았다고 정당화하는 것을 이르는 말. 출처는 국립국어원.

푸딩 : 아니 아니. 어떤 맥락이냐고요!

치즈 : 제가 근무했던 회사들에서 제 상사는 제가 바깥 활동하는 걸 좋아하고 수용하셨어요. 하지만 딴지를 걸던 사람은 대부분 저보다 결핍되어 있었어요. 그래서 단순하게 내가 나보다 결핍을 느끼는 사람에게 끌려다닐 필요없다, 굳이 왜 신경을 써야하지? 라고 정신승리를 시전했어요. 회사와 상사들은 “어, 치즈. 밖에 나가서 회사도 알리고 팀에 대해서도 이야기 잘 해봐”라고 응원을 해주시는 편이었어요. 그렇게 “바깥 활동을 하고 다니면 더 좋은 거 아냐?”라고 정신승리를 했죠.

발표의 목적

푸딩 : 좋네요. 근데 말씀하신 그 정신승리에까지 도달하고 유지하는 게 쉽진 않아 보여요.

치즈 : 그렇죠. 많이 느끼고 있어요. 막내 신입 개발자에서 PO에 이르는 과정에서 제 업무 분야가 넓혀졌는데, 그럴수록 가장 많이 하는 활동은 다른 사람과 말을 하는 거예요. 물론 개발자가 코드로 승부해야 맞지만, 그런 행위의 본질은 문제를 풀어내는 거잖아요. 결국 다들 같은 목표를 향해 각자의 전문성으로 기여하는 거죠. PO이자 리더인 저는 팀의 성과를 내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거예요. 우리가 만들어낸 것을 고객에게 얼마나 매력있게 소구할 것인지, 또 남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고민하고, 그 결과를 전달해서 그 사람이 우리 제품을 가치를 더하도록 설득하는 역할을 하다보니 개발자일 때보다 더 많이 소통해야 해요. 이러한 말을 하는 것, 그것도 많이 하는 것은 인공지능으로 대체하기 어려워요.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목적과 맥락은 고유하게 사람에게 있거든요.

푸딩 : 목적과 맥락이 뭔가요?

치즈 : 음. 메시지랄까요.

푸딩 : 아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인공지능이 일도 잘하고, 하는 말은 유려한데 알맹이가 없다고 느낄 때가 많아요. 아무말 대잔치랄까요.

치즈 : 그렇죠.

푸딩 : 인공지능을 조수로 활용하는 법을 책으로 쓰신 분이 하는 말이라 더 설득력 있어요.

치즈 : 이렇게 메시지가 담긴 말을 잘하기 위해 연습하는 방법으로써 사람을 만나고 대면(1on1) 네트워킹하는 것도 좋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발표하는 거라 생각해요. 짧은 시간 안에 각기 다른 관심사와 생각을 가진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정제된 언어로 내 생각, 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거든요. 발표를 하면서 저 자신이 많은 성장을 이뤄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런 성장을 더 으로 이루려면, 생각을 전달하고 설득하는 실력을 채워야 해요. 실력을 키우는 데에는 컨퍼런스 등에서 발표하는 연습, 그리고 컨퍼런스에서 발표하는 그 자체에서 경험하는 연습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해요.

푸딩 : 성장 되먹임(feedback loop)이군요. 발표를 하여 성장하는데, 그런 성장을 이루려면 실력이 필요하고, 그 실력을 키우는 연습은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 그리고 발표 그 자체에서 한다. 청중은 발표 상황에서 내 생각이라는 제품을 기대하는 고객이니, 개발자든 PO이든 자신의 제품으로 고객을 설득하는 좋은 훈련이자 연습이네요.

치즈 : 맞아요.

푸딩 : 치즈님이 발표에서 메시지를 담는 이유가 궁금해지네요.

푸딩 :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2024년 9월 28일, 14시 40분쯤엔 치즈님이 발표를 마치실텐데요. 치즈님이 발표를 마치고나면 청중들은 치즈님한테 어떤 질문을 할 것 같아요? 혹은 이런 질문이 나오면 나는 얼굴에 표정을 숨기지 못할 정도로 좋아할 것이다, 하는 질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치즈 : 오! 좋은 질문이네요. 굉장히 좋은 질문이에요.

치즈 : 저는, 리더로 가려고 하는 어려움을 겪고 계신 여성 혹은 시니어에서 리더로 넘어가는 분들의 고민이 담긴 질문, “나는 이럴 때 어떡해야 할까요?” 같은 질문이 나오면 좋겠어요. 이런 질문이 좋은 답을 드리기 어려운데, 사람마다 질문하는 결, 환경, 그리고 상황도 다 다르잖아요. 당연히 제 대답은 저라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대답일 뿐 해답이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요. 그래도 이런 질문이 많이 나오길 바라는 건, 이런 질문이 사람들 머릿 속에 있는 게 아니라 세상 밖으로 많이 나와야 문제로 인식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어? 이런 게 내가 처한 당연한 상황이 아니라 문제였네?”라고 느끼는 거죠. 그래서 제가 답으로 제시하는 의견 그 자체보다 제 발표가 발화점 역할을 하여 질문이 자꾸 나오는 것이 중요해요.

치즈 : 리더로 넘어가는 어려움과 고민, 리더십에 대한 고민이 각자가 감수하고 혼자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겪는 어려움과 고민을 다른 사람도 겪는다는 걸 인지하고, 어떤 것은 체계(system)의 모순이나 문제라는 걸 서로 알아가는 경험을 온라인, 오프라인에서 오가면 좋겠어요.

푸딩 : 그게 바로 치즈님이 발표 세션에서 해내실 중요한 역할이죠. 그런 질문이 나오는 광경을 보면 감격스레 치즈님을 후광으로 더욱 빛나게 볼 것 같아요.

푸딩 : 목이 쉬실 정도로 열심히 질문에 답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치즈 : 제가 말이 많죠?

푸딩 : 아주 좋습니다. 근데 다음에는 음료를 먼저 배달로 보내드리고 해야겠네요.

치즈 : 다.음이요? 저, 제가 마실거리 갖고 왔어요.

푸딩 : 인터뷰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치즈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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